'접촉 전염'오해로 취업때 차별 관행 여전 身檢, 채용후로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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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학원 석사 출신의 C군은 대기업 입사 과정에서 1차 서류전형, 2차 면접을 통과하고 합격통지를 받았으나 신체검사 결과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라는 이유로 끝내 불합격되고 말았다. 그는 취업 실패를 거듭하다 최근 친구와 조그만 사업을 시작했다. C군에게 B형 간염은 재능이나 실력보다 더 큰 장애물이었다.

우리나라는 전 인구의 약 7~8%가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다. 그러나 단지 바이러스가 몸 안에 있을 뿐 간 기능이 정상이므로 일상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고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가능성도 작다. 그런데도 취업 연령층인 20대의 45만명 정도가 바로 이 때문에 사회로부터 '죄인 아닌 죄인'으로 취급받고 있다.

정부는 2000년 10월 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B형 간염을 취업 제한 질병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민간기업에서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를 불합격시키는 관행은 여전하다. 복지부·노동부는 전경련 등 경제 5단체에 협조서한까지 보내 불이익을 주지 말도록 촉구했지만 전염성 우려와 혹시라도 근무 중 간염이나 간경화로 발전해 산업재해 보상을 해주느라 고용 비용이 더 들어갈까봐 피하는 것이다.

전염성을 우려한 사회적 차별 관행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데는 1980년대 정부가 B형 간염 퇴치를 위해 술잔 돌리지 않기, 국이나 찌개 등을 같이 먹지 않기 등 식생활 개선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시행한 것이 한 원인이다. 그러나 최근 대한간학회에서 발간한 『간추린 간질환 길잡이』는 이런 캠페인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보여준다. 'B형 간염은 혈액이나 체액, 성행위를 통해서만 전염되므로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과 단순한 접촉·악수·포옹·키스나 음식물을 통해서는 전염되지 않는다. 식기를 따로 쓸 필요가 없다. 목욕탕·사우나·수영장을 통해 전염되지 않으며 학교·직장·군대와 같은 단체생활을 제한할 필요도 없다'.

이런 의료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각인된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와는 식사도 술도 같이 해서는 안된다'는 편견과 오해는 쉽게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 기업주 입장에서 회사에 피해를 끼치지 않고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사람을 고용해야 하므로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의 취업은 안된다고 하는 것 또한 합당한 이유는 못된다. 그런 이유라면 흡연이 질병에 걸릴 확률이 훨씬 더 높기 때문이다.

미국과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질병이나 신체적 약점을 이유로 채용을 제한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이런 취업에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건강검진 시기를 현행 '채용 전'에서 '채용 후 배치 전'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B형 간염이 만연한 나라다. 따라서 B형 간염의 실체와 전염 경로를 올바르게 이해해 더 이상 B형 간염이 전파되지 않도록 국가적·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하고 건강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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