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학생이 평가 싫어 거리로 나선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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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미성년자들도 자신의 요구를 주장할 자유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과연 이들의 요구가 교육적인 가치와 이념에 부합되는 것인지에 대한 최종 판단은 당연히 교육계의 몫이다. 더 나아가 이들의 요구 중 적절치 못한 부분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야말로 교육자로서 책임 있는 행동이다. 필자는 아수나로가 하는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바람직한 대처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선 아수나로는 학업성취도평가와 교원능력개발평가가 학생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정책들이라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비인간적인 경쟁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교육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무릇 평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열 가리기나 경쟁이 아니다. 평가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을 동기화하고 교육의 과정 전체를 점검하는 것이 평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따라서 ‘평가=경쟁=인권침해’라는 등식은 왜곡되고 과장된 것이다.

더욱이 이들의 주장이 옳은 것이라면, 학교에서 실시하는 모든 종류의 평가는 물론 사회적으로 경쟁을 유발하는 어떠한 체제나 제도도 용인돼서는 안 된다는 터무니없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시험뿐 아니라 대학 선발제도를 포함한 모든 경쟁 선발체제는 없어져야 한다.

이번 월드컵에서 선전하며 온 국민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던 우리의 축구대표팀도 평가와 경쟁을 거쳐 구성된 팀이다. 그렇다면 이 선수들의 인권 또한 침해당했다는 말인가.

학업성취도평가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평가다. 그에 대한 부담감을 아이를 길러본 부모의 입장에서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 청소년단체가 교원능력개발평가까지 거부하는 논리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교원능력개발평가는 문자 그대로 교사들의 능력을 향상시켜 학생들에게 보다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실시되는 평가다. 일부 교사들의 불만 표출이라면 몰라도, 학생들이 이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이는 자칫 ‘교사들의 배후 연계’와 같은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이 경우 사회적 비난은 고스란히 무고한 교사들의 몫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렇듯 학업성취도평가나 교원능력개발평가는 분명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다. 교육에 관한 중대한 의사결정들이 미성년자인 학생들의 요구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이 사사건건 인권을 들먹이며 교장과 교사의 인사나 교육과정의 편성 및 운영뿐 아니라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 전반에 관여하려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교육계는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 학업성취도평가 및 교원능력개발평가를 거부하고 있는 청소년단체에 대해 제재를 가하거나 그들의 집회를 원천봉쇄하자는 말이 아니다. 교육자의 양심과 전문성에 입각해 그들의 요구가 미성년자인 학생의 신분으로서 부적절한 주장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단체의 홍보물은 이미 특정 교원단체의 서울지부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돼 있다고 한다. 만일 게시한 목적이 교원평가 반대를 홍보하는 데 있다면 이들은 집단 이기주의를 위해 미성년자들을 이용한다는 따가운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진보진영 일각에서 이번 일을 ‘4·19 정신’의 승계로 본다니 망연자실할 뿐이다. 학력평가나 교원평가를 4·19 때 청소년들이 항거했던 폭력적 독재와 동일시한다면 이야말로 교육적 현안을 정치적으로 쟁점화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교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