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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큰 장, 10년 만에 다시 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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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첨단기술 관련 벤처기업이 많이 몰려 있는 서울 구로구 가산디지털단지 전경. [중앙포토]

인터넷 관련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웹 에이전시’ 개념을 국내 처음 도입한 벤처 1세대 노상범(43) 홍익인터넷 창업자가 돌아왔다. 2003년 부도를 맞고 잊혀진 지 7년 만이다. 올 들어 불어닥친 스마트폰 열풍이 그에게 손짓했다. 그는 2월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이하 앱) 교육·컨설팅 업체 홍익세상을 세우고 앱 관련 플랫폼을 제작해 이달 중 시제품을 내놓는다.

왕년의 ‘벤처 고수’들이 속속 몰려들 정도의 큰 장(場)이 10년 만에 섰다.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무렵의 벤처 열풍이 다시 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화끈한 바람이다. 정부 공인 벤처업체 수 통계를 보면 이를 가늠할 수 있다. 지난해에는 전년도 대비 2.5배에 달하는 3492곳이 벤처 확인을 받았다. 벤처 열기의 절정이던 2000년 한 해 수준(3864곳)에 육박한다. 올 들어서도 3월 200곳, 4월 557곳, 5월 812곳 등 증가세가 무섭다. 5월 수치는 월별 사상 최다 기록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벤처자본의 투자를 받은 곳을 진정한 벤처기업으로 치는데, 우리도 그 투자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벤처자본의 신규 투자는 2008년 총 7247억원에서 지난해 8671억원으로 20%가량 늘었다. 올 들어 지금까지 추세를 보면 올해는 1조원 벽이 무너지지 않을까 전망한다.

중소기업청 김영태 벤처투자과장은 “창업투자회사 같은 벤처캐피털이 투자용 실탄(자금)을 꽤 확보한 만큼 올해 투자금액은 적잖게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2008년 총 1조918억원 규모의 벤처투자조합이 결성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조4163억원으로 늘었다.

‘벤처 르네상스’가 예고되는 건 벤처 업종과 궁합이 맞는 신기술·신산업이 근래 부쩍 뜬 덕분이다.


스마트폰과 3D(3차원)영상, 에너지, 의료, 녹색 바이오 등이 차세대 먹을거리로 각광받으면서 벤처 생태계가 전후방으로 조성된 것이다. 중기청의 ‘벤처기업 4대 업종 분포 비중’ 자료를 보면 2000년에 정보기술(IT) 비중이 30%에 달했지만 지난해엔 14%로 대폭 낮아졌다. 이에 비해 28%이던 첨단 제조산업(에너지, 의료, 컴퓨터·반도체, 통신기기·방송기기) 비중은 37%로 늘었다. 벤처 토양이 그만큼 다양하고 기름져졌다는 이야기다. 벤처기업협회 김영수 벤처정책본부장은 “녹색산업의 성장과 스마트폰의 앱스토어가 벤처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풀이했다.

일례로 우리나라 첫 남북한 합작 3D 애니메이션 ‘게으른 고양이 딩가’를 만든 애니메이션 제작자 겸 카투니스트 김병준(37)씨는 지난해 9월 이와 관련된 업체를 세웠다. 김 대표는 “증강현실과 3D 게임 영상 제작에 관한 외부 상담 문의가 늘었다”고 즐거워했다. 국내 간판 바이오업체인 셀트리온은 최근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에서 2000억원을 투자받았다. 미국 GE도 국내 바이오 업계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10년 만의 벤처 바람이 더욱 기대되는 건 예전보다 벤처 인프라와 경영자 층이 두터워졌기 때문이다. 2000년에는 투자자금 회수라든지 기술이전·거래 등 인프라가 미성숙한 상태였다면 지금은 벤처특별법 등을 바탕으로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지고 모태펀드(특정 기업이 아니라 벤처투자조합에 투자하는 펀드)라는 발달된 장치가 생겼다.

벤처기업협회의 ‘창업 전 최고경영자(CEO)의 실무경험 현황’ 설문조사를 보면 지난해 현재 벤처 CEO의 실무 기간은 평균 11년이 넘었다. 1998년 프리챌 창업으로 가입자 800만 명을 확보하며 ‘인터넷 커뮤니티의 선구자’ 소리를 듣던 전제완(47)씨는 유아짱 대표로 되돌아왔다. 유·무선 방송 플랫폼 ‘짱라이브’를 만드는 회사다. 일반인도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쉽사리 할 수 있도록 하는 신개념 방송 서비스다. 그는 “아이폰용 짱라이브 앱을 5월, 안드로이드폰용 버전은 지난달 등록했다”고 전했다. 벤처의 경영 투명성도 개선됐다. 벤처업체의 기술신용보증기금 사고율은 2004년 9%에서 지난해 2%로 떨어졌다.

제2의 벤처 열풍에는 물론 음지도 많다. 돈이 풀린다지만 작은 업체들에는 그림의 떡이다. 벤처기업협회 박양규 과장은 “기업 규모나 연륜보다 기술력이나 사업성을 토대로 자금 지원이 이뤄지는 선진 시스템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담보와 연대보증 같은 관행이 완화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윤찬·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 상세한 기사는 중앙일보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6일 발매, 1045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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