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일본 없어도 우리가 그리 죽어라 뛰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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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일 양국이 상대국의 경기를 중계하거나 응원하는 모습을 비교해 보니 차이점들이 보인다. 일본 방송에서 한국 경기를 중계할 때 아나운서는 마치 자신이 한국인인 것처럼 흥분을 하고, 해설자는 박지성 같은 선수가 있는 한국 팀이 부럽고, 한국 같은 나라가 이웃에 있다는 것이 일본에는 행운이라고까지 치켜세우는 반면, 한국의 아나운서나 해설자는 은연중에 일본보다는 상대 팀을 응원하는 분위기로 중계와 해설을 한다. 일본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감정을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월드컵과 같이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스포츠 경기에서 이러한 차이는 감정을 접어두고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월드컵은 대륙별로 쿼터를 정해 주고 예선을 거쳐 지역 대표를 선발한다. 따라서 한국이나 일본은 자국의 명예와 함께 아시아의 대표로서 평가를 받는 것이다. 유럽을 여행할 때면 축구에 대한 그들의 열정에 부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열정의 크기로 미루어 볼 때 유럽인들이 동양인에 대해 느끼는 우월감 중에는 그들이 우리보다 축구를 잘한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언젠가는 축구를 통해 그들의 콧대를 꺾을 수 있다면 정말 통쾌한 일이 될 것 같다.

동양인 중에서도 한국인과 체격 조건이 가장 유사한 것은 일본인이다. 그런 점에서 스포츠에 관한 한 일본이 가능한 종목이면 한국이 못할 이유가 없고, 한국이 잘하는 종목은 일본도 잘할 수 있기도 하다. 김연아가 겨울올림픽 피겨 금메달을 딴 것도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 동양인 최초로 아라카와 시즈카가 금메달을 딴 것에 자극을 받은 바가 있었을 것이고, 아사다 마오 같은 경쟁자가 있었기 때문에 세계신기록을 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강한 이웃이 있어야 하는 것은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수출 주도로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제조업 강국 일본이 이웃에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대일 무역 역조가 매년 심화되어 불균형 시정을 위한 목소리도 높긴 하지만, 대일 무역 적자는 시설재와 부품산업의 역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양질의 설비와 부품을 가까운 이웃에서 수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 제품이 수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설비와 부품에는 기술도 같이 묻어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과 우리의 수출 산업은 서로 협력하며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제조업의 역사는 불과 40년에 지나지 않는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모두 1969년에 설립되었고 불과 40년 만에 이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이 된 것은 이웃에 소니·도요타·신닛데쓰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있었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한때는 이들을 영원히 추월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일본 기업들이 한국 기업의 강점을 배우고자 하는 움직임마저 생기고 있으니 정말 스스로도 놀라운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스포츠나 기업이나 이웃에 강력한 경쟁자가 있어 우리의 경쟁심을 자극하는 것은 우리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한·일 모두 본선에 진출하여 붉은 악마와 울트라 닛폰이 함께 응원한다면 응원단 수에서도 서로 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구학서 신세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