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시에 거리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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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트루시에 감독 이름을 딴 '트루시에 거리'를 만들자."

9일 러시아를 격퇴하고 월드컵 본선 첫 승리를 거머 쥔 일본열도가 뜨겁게 달아 오른 가운데 한 언론사는 이같이 제안했다. 현재 필리프 트루시에 감독의 국민적 인기를 감안할 때 이는 전혀 무리가 아니다. 승리에 도취한 일본 서포터스는 이튿날 새벽까지 시내 곳곳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잔치가 벌어질 정도였다. 이들은 한결같이 그의 사진을 들고 '트루시에 닛폰(일본)'을 외쳤다.

도쿄의 번화가인 이케부쿠로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오늘의 영광은 트루시에 감독 없이는 불가능했다"며 "그를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열성팬은 "그를 귀화시켜 영원히 일본에 있게 하자"고 말했다.

1998년부터 대표팀 감독을 맡은 트루시에는 일본 축구를 세계 수준으로 올려 놨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0년 아시안컵 우승,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도 했다. 그는 일본뿐 아니라 코트디부아르·나이지리아·부르키나파소·남아공 등 맡는 팀마다 축구 수준을 향상시켜 '하얀 마술사'란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본 언론의 집중적인 포화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유럽 전지 훈련 때 프랑스팀의 지네딘 지단에게 사인을 받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잡혀 체면을 구겼다.

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나카무라 순스케 선수를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한 것에 대해 독단적 대표팀 운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더구나 기자회견장에 애완견을 데리고 나타나 일본 언론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았다. 그러나 트루시에는 러시아전 승리로 이같은 비난을 말끔히 씻어냈다.

그는 경기전 선수들에게 "너희들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벨기에전도 내용면에서는 이긴 경기였다. 똑같이만 한다면 러시아도 깰 수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전술면에서도 완벽함을 보여줬다. 우선 투혼 넘치는 나라자키 골키퍼를 기용했다. 부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리오카 대신 미야모토로 하여금 '플랫 3' 수비를 지휘하게 해 러시아 공격의 예봉을 꺾었다.

이번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일본팀을 떠나게 될 것으로 알려진 트루시에 감독이지만,'트루시에 포에버 위드 재팬(Troussier for

ever with Japan)'을 외치는 일본인들의 열망에 그의 거취가 바뀔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도쿄=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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