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物 '크로스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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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8면

'나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야. 그렇다고 여인이 된 것도 아니지(I'm not a girl, not yet a woman)'. 깜찍한 외모와 가창력으로 1990년대 후반 미국 팝시장을 사로잡았던 요정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영화 데뷔작 '크로스로드'(사진)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노랫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크로스로드'는 성장 영화다. 물정 모르던 소녀 시절의 꿈과 소망이 현실과 부딪치면서 사그라들고 그러면서 차츰 '어른'이 돼간다는 전형적인 내용이다.

루시(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키트(조이 살다나), 미미(타린 매닝)는 어렸을 적엔 둘도 없는 단짝이었지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뒤 서먹해진 사이다. 졸업생 대표로 연설할 만큼 우등생이자 모범생인 루시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를 늘 그리워한다. 흑인 소녀 키트는 3년간 비만 캠프에 다닌 끝에 바비 인형 같은 몸매를 지니게 되지만 심각한 '공주병' 환자다.

미미는 파티에서 술에 취한 남자에게 성폭행 당해 임신한 상태다. 루시는 엄마를 찾기 위해, 키트는 바람 난 남자 친구를 다잡기 위해, 그리고 미미는 가수 오디션에 응모하기 위해 클럽에서 만난 벤(앤슨 마운트)과 LA로 떠난다.

'크로스로드'는 스피어스의 출연 결정으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뿌렸지만 평이한 청춘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 영화의 패착(敗着)은 스피어스의 매력을 십분 활용하지 못한 점이다. 등산용 모자를 눌러 쓰고 헐렁한 스웨터를 걸친 루시는 공부밖에 모르는 소심한 모범생 이미지를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스피어스가 출연한다고 해 극장에 몰려간 팬들을 실망시킬 공산이 크다.

스피어스는 이 영화 중 가장 볼 만한 장면 중 하나인 가라오케 콘테스트에서 '아이 러브 로큰롤'을 열창하는 부분에서도 기대했던 만큼의 섹시함이나 폭발력을 발휘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감독 탐라 데이비스. 15세 이상 관람가. 13일 개봉.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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