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美 '속도전' 경계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미국이 포르투갈을 꺾은 '이변'은 포르투갈과 2강 체제를 굳혀 16강에 진출하려던 한국에 복병이 됐다. 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남은 미국·포르투갈전이 모두 부담스럽게 됐다.

미국의 젊은 패기는 힘이 넘쳤고, 포르투갈은 뭔가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피구의 몸놀림은 둔했고, 유로 2000과 월드컵 예선에서 보여줬던 포르투갈의 날카롭고 빠른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출발부터 미국의 공세가 매섭게 시작됐다. 전반 4분 왼쪽에서 얻은 코너킥을 스튜어트가 감아 올리자 가운데에 있던 맥브라이드가 헤딩슛, 포르투갈 골키퍼 바이아가 가까스로 막아냈으나 볼은 정확히 미국 오브라이언의 발 앞에 떨어졌다. 오브라이언은 빈 골문을 향해 가볍게 왼발로 차넣어 파란의 서막을 열었다.

미국엔 행운도 뒤따랐다. 포르투갈 원톱 파울레타의 활발한 움직임에 다소 고전하던 미국은 30분 오른쪽 사이드에서 도너번이 올린 센터링이 포르투갈 수비수 조르제 코스타의 머리에 맞고 꺾이며 빨려들 듯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 대회 첫 자책골.

기세가 오른 미국은 36분 추가골을 뽑으며 파죽지세의 기세로 치고나갔다. 오른쪽 사이드를 오버 래핑한 새네가 날카롭게 문전 중앙으로 띄워 올리자 가운데에 버티고 있던 맥브라이드는 기다렸다는 듯이 깨끗하게 다이빙 헤딩슛, 포르투갈 선수단과 관중들의 얼을 완전히 빼버렸다.

그러나 3-0이란 스코어는 미국엔 방심을, 포르투갈엔 오기를 갖게 해주었다. 포르투갈은 세번째 골을 먹은 지 불과 3분 뒤인 39분 한골을 만회했다. 피구가 찬 오른쪽 코너킥을 공격에 가담한 수비수 베투가 헤딩슛, 오브라이언이 차낸 것을 다시 오른발로 차 넣어 추격을 시작했다.

후반은 완전한 포르투갈의 독무대였다. 미국은 승리를 유지하기 위해 움츠러들었고 포르투갈은 최강의 공격진이라는 파울레타-콘세이상-피구의 3각 편대로 미국 골문을 계속 두드렸다. 좀처럼 열리지 않던 미국의 골문은 엉뚱한 곳에서 뻥 뚫렸다. 후반 26분 파울레타가 왼쪽에서 크로스한 볼을 골문 쪽으로 뛰어가던 미국 노장 수비수 어구스가 차낸다는 것이 마치 공격수가 발리슛을 하듯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자책골.

3-2까지 점수차가 좁혀지자 경기장이 술렁거렸다. 그러나 더 이상의 행운은 없었다. 누누 고메스까지 투입하며 동점골에 안간힘을 썼으나 추가골을 뽑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전에서 북한에 0-3으로 뒤지고도 네골을 터뜨리며 대역전극을 펼친 에우세비오의 '전설'이 그리울 따름이었다.

수원=최민우·이철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