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꿈결처럼 들리는 금관악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0면

10여년 전 런던필하모닉과 무소르그스키의'전람회의 그림'을 녹음한 발레리 게르기예프(49·키로프 오페라 음악감독)가 이번엔 빈필하모닉과 같은 작품을 수록한 음반을 내놓았다. 라벨의 관현악 편곡 속에 감춰진 무소르그스키 특유의 슬라브적인 강렬한 색채를 제대로 들춰내고 있는 것은 10년 전 녹음이나 마찬가지다. 숨가쁘게 돌진하는 리듬도 여전하다. 하지만 이번 빈필하모닉과의 녹음은 보다 섬세하고 정제된 느낌을 준다. 금관악기의 포효마저 부드럽게 들린다. 그런 점에서 게르기예프가 자신이 객원 지휘를 맡고 있는 오케스트라 중 빈필하모닉을 최고의 교향악단으로 꼽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게르기예프가 연주하는 '전람회의 그림'이나 '민둥산의 하룻밤'은 쉽게 흘려듣는 감상법을 허용하지 않는다.한 순간도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수록된 작품들은 무소르그스키의 '코반시치나 서곡''민둥산의 하룻밤'을 각각 쇼스타코비치와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관현악으로 편곡한 것이다. 충분한 잔향 시간과 두터운 베이스, 화려한 고음을 잘 살려내는 빈 무지크페어라인홀의 자연스러운 음향조건을 최대한 살린 녹음도 이 음반이 주는 매력이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