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 거부 악용될 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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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사는 곳이 대전 국립현충원 주변이라서 그런지,6월이 되면 조국을 위해 산화한 젊은 영령들의 숭고한 정신을 자주 되새겨 보게 된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을 생각하면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의 의미가 새삼스러워진다.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이래 지난 50여년간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던 국민의 신성한 의무인 '병역 의무'가 요즘 잦은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인기 연예인의 병역 회피, 월드컵 16강 진출 선수들에 대한 병역면제 혜택 논의, 일부 부유층 임신부들의 원정 출산 등에 이르기까지 내용도 가지가지다. 특히 양심에 의한 병역 거부 문제는 이제 당당히 우리 사회 인권문제로까지 비화해 버렸다.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주장한다. 자신들은 결코 병역을 면제받자는 것이 아니며 대체복무를 통해 군복무를 대신하고 싶을 뿐이라고.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그들의 제안은 수용하기가 매우 곤란하다는 것이 우리의 안보 현실이다. 대체복무란 공익근무요원이나 산업기능요원과 같이 사회 각 분야에서 일정기간 전투병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군 복무를 대신하는 것이다. 이들 역시 4주간의 군사훈련과 전역 후 8년간의 예비군 훈련과정을 거쳐야 하며,45세까지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총을 들고 전쟁에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이 모든 것을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일체의 집총 훈련과정이 생략된 별도의 대체복무제도를 만들어달라고 한다. 바로 여기에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복무방법에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집총을 거부하기 때문에 유사시 이들을 전쟁에 투입할 수 없는 것이다. 전쟁의 위협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는 게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 이들처럼 집총을 거부해 현역을 피하고 전쟁에도 나가지 않겠다고 하면 과연 어느 누가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겠다고 나서겠는가.

물론 요즘 확산하고 있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사회적 배려에 동승해 새로운 대체복무제도를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선 극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개념인 양심을 심사하고 평가하기 위한 잣대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또 이런 약점을 악용, 사이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속출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감소 추세에 있는 현역병을 어떤 방법으로 충원할 것이며, 일단 유사시 전쟁에 참여할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그리고 이들의 대체복무기간은 도대체 얼마로 정하자는 것인가.

현재 병역 거부자들은 대체복무기간을 현역 복무 26개월을 기준으로 정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현역 대상자들에겐 26개월의 현역 복무와 전역 후 8년간의 예비군 훈련, 유사시 45세까지 참전 등의 국방의무가 부여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대체복무기간은 이에 비례해 산정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기간을 얼마로 정하든 다른 젊은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희생에 무임승차한 대가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지금 대전 국립현충원에는 2만6천여기(基)의 젊은 영령들이 안장돼 있다. 그들은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총을 들고 전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조국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기꺼이 바쳤다. 그들 또한 누구보다 양심적인 젊은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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