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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교 버스 추락 참사] 어이없는 사고, 안타까운 죽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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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성준이가 부모님을 찾아요. 아빠랑 엄마는 어떻냐고. 많이 다쳤느냐고 물어요”

4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임민숙(40·여)씨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임씨는 이번 사고로 일가족 5명 중 4명이 죽은 고(故) 임찬호(42) 경주대 교수의 여동생이다. 일가족은 임 교수의 업무 겸 여행 목적으로 싱가포르로 출국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임 교수의 둘째 아들 성준(7)군만 홀로 살아남았다. 세상을 떠난 가족 4명의 빈소가 이 병원에 마련됐다. 성준군도 같은 병원 응급실에서 어깨 골절 치료를 받고 있다.

친척들에 따르면 성준군은 “사고가 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옆에 모르는 할머니가 쓰러져 있었다. 할머니를 도와주려고 팔을 뻗었는데 다쳤는지 팔이 안 움직여 못 도와 드렸다”며 속상해했다고 한다. 평소에도 자기가 힘이 세다고 자랑하던 아이였다. 세상을 떠난 첫째 성훈(10)군보다 체격도 크고 어른스러웠다. 결국 성준군은 빛이 보이는 구멍을 따라 혼자 기어 나왔다고 한다. 그는 “기어 나올 때 나 혼자 살아남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고 친척들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성준군에게 친척들은 부모와 형·여동생의 죽음을 알리지 못하고 있다.

임 교수 부부는 껌 하나를 살 때도 독단적으로 하지 않고 상의할 만큼 금실이 좋았다. 부인 이현정(39)씨도 곧 박사 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었다. 부부가 공부하느라 바빠 외할머니 김옥순씨가 세 남매를 키웠다. 김씨는 부부가 싱가포르에 간다는 말을 듣고 막내딸 송현(3)이는 데려가지 말라고 했으나 듣지 않아 변을 당했다.

마이크로센서 분야를 가르친 임 교수는 강의와 학생밖에 모르는 실력 있고 촉망받는 교수여서 학교 측은 비통한 분위기다. 그는 광운대 전기공학과에서 학·석·박사를 받고 1999년 경주대 교수로 임용된 뒤 학부장과 교수학습지원부장을 지냈다.

동료 교수인 컴퓨터정보공학과 임길택(42) 학과장은 “고인은 조용한 성품이지만 가르칠 때는 열정적이고 특히 학생들에게 애정이 많아 연구실에 이례적으로 학부 학생 2명을 두고 지도했다”고 말했다.

안타까운 것은 성준군만이 아니다. 사고에서 가벼운 상처만 입은 변세환(5)군이 살아남은 것은 외할머니가 온 몸으로 감싸 안아 보호한 덕분인 것으로 밝혀졌다. 변군은 3일 오후 외할아버지 설해용(68)씨와 외할머니 김순덕(57)씨, 어머니 설여진(39)씨와 함께 버스를 타고 인천 영종도의 외삼촌 집으로 가다 사고로 외할아버지와 어머니가 현장에서 숨지고 말았다.

포스코는 회사 인재를 잃고 슬퍼하고 있다. 포스코 기술연구원 제선연구그룹 소속의 이시형(46·공학박사) 전문연구원이 호주 출장을 위해 3일 사고 버스를 탔다가 숨졌다. 이씨는 광석 전문가로 같은 버스를 탔다가 부상을 당한 서인국(53) 그룹리더와 함께 이날부터 10일까지 서호주 퍼스 인근 광산의 포스코 신규 개발 지분투자 참여를 위한 기술조사를 위해 호주로 떠날 예정이었다.

이씨는 포스코 안에서 철광석 가공 공정인 소결·코크스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그는 포스코에 입사한 뒤 광양제철소에서 10여 년을 근무했고 포항으로 옮겨 온 뒤 능력을 인정받아 전문가 양성 차원에서 호주로 2년간 파견됐다. 이씨는 호주에 있는 동안 뉴사우스웨일스대학(UNSW)에서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연구는 물론 금속공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포스코 측은 “이 박사가 평소 의욕적이고 친화력이 뛰어나 차기 리더로 성장할 재목이었다”며 “아까운 인재를 잃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주시는 초상집이다. 사고로 숨진 12명 가운데 경주 연고자는 7명이나 된다. 4명은 중경상이다. 희생자 중에는 일가족 4명과 2명이 포함돼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경주대 임 교수 가족 외에도 인천의 손자 돌 잔치에 가려고 아내와 딸·외손자와 함께 버스에 탔던 설해용씨가 딸과 함께 숨지고 아내와 외손자는 중경상을 입었다. 이 밖에 호주 어학연수 중 방학을 맞아 집에 들렀다가 다시 출국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버스에 탔던 고은수(17)양이 숨졌고, 어머니는 크게 다쳤다.

경주시는 즉각 사태 수습에 나섰다. 사고 당일 밤 시청에 상황실을 설치하고 부시장과 직원을 현장에 파견했다. 최양식 시장은 사고 당일 밤늦게까지 시청에서 현황을 보고받고 유족 지원에 발벗고 나섰다.

송의호·최모란·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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