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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대 ~ 한민국!’의 열정을 일상으로 가져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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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면

이제 아쉬움은 좀 접혔나요? 아깝게 사라진 8강의 꿈 말입니다. 우리 선수들이 너무나도 잘 뛰었기에 쉽지 않을 테지요. 하지만 4년 뒤 다시 꺼내 들려면 이제 잘 갈무리해야 합니다. 처음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지요. 그러면서 한번쯤 되새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네요. 여러분에게 월드컵은 무엇이었습니까?

이번에도 우리는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라운드에서도 그랬지만 이른 새벽 거리에서도, 비 오는 광장에서도 출렁이는 빨간 물결은 지구촌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삼바 카니발의 나라 브라질에서도 볼 수 없는 이런 열정은 과연 무엇일까요? 축구 사랑인가요, 아니면 애국심인가요? 8강 탈락과 함께 바로 식는 열기를 보면 축구 사랑 같지도 않고, ‘대~한민국’을 외친다고 꼭 애국심이라 보기도 어려울 것 같네요.

이런 대답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뭘 따져요. 그냥 즐기는 거지요. 마구 흔들고 목청껏 외치며 신나게 노는 거라고요.” 맞습니다. 그걸 보고 외국 언론들도 “한국인들은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즐긴다”고 감탄했다지요.

즐기는 거 좋습니다. 기왕 즐기려면 화끈하게 즐겨야지요. 다른 건 다 잊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합니다. 여러분 좋아하는 말이 그거 아닙니까?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실을 즐겨라!’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괴짜 선생 키팅의 말로 유명해졌지요. 영화에선 ‘현실을 즐겨라’로 번역됐지만 정확하게는 영화의 원어 대사처럼 ‘오늘을 잡아라(seize the day)’라는 뜻입니다. 원래는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송시에 나오는 문장이지요. 호라티우스는 미래를 걱정하는 여인에게 시간이 얼마나 덧없는지 설명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맺지요. “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오늘을 붙잡아라. 내일은 최소한만 믿고.)”

즐기는 거나 붙잡는 거나 그게 그겁니다. 붙잡지 않고 즐길 수 있나요? 키팅 선생은 이어 말합니다. “평범한 삶을 살지 말라(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그저 그렇게 살며 삶을 끝내고 싶진 않겠죠? 그렇다면 다시 주문을 외우세요. 카르페 디엠. 오늘을 꽉 붙잡아야 하는 겁니다. 바보들은 오늘을 잡는 대신 내일만 걱정합니다. 그러니 늘 걱정하는 내일이 곧 오늘이 되고 마는 것이죠. 현명한 사람은 오늘을 붙잡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는 말입니다. 느꼈잖아요. ‘대~한민국’을 외치던 그 느낌을 그대로 일상으로 가져오세요. 그리고 오늘을 잡으세요.

물론 쉽지 않겠지요. 노는 거하고 공부하거나 일하는 게 같나요. 그래서 방법을 알려 드리려는 겁니다. 제 방법이 아니고 우리의 훌륭한 선배 다산 정약용의 노하우입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좀 길게 인용해 보겠습니다.

“네가 양계를 한다고 들었다. 닭을 치는 건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닭을 기르는 데도 우아한 것과 속된 것, 맑은 것과 탁한 것의 차이가 있다. 진실로 농서를 숙독해서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 보거라. 빛깔에 따라 구분해 보기도 하고 횃대를 달리 해보기도 해서 닭이 살찌고 다른 집보다 번식도 더 낫게 해야지. 또 간혹 시를 지어 닭의 정경을 묘사해 보도록 해라. 사물로 사물에 얹는 것, 이것이 글 읽는 사람의 양계니라. 만약 이익만 따지고 의리는 거들떠보지 않는다거나 기를 줄만 알고 운치를 몰라 이웃집 늙은이와 밤낮 다투는 것은 바로 못난 사내의 양계인 게다. 너는 어떤 식으로 하려는지 모르겠구나. 기왕 닭을 기른다면 모름지기 백가의 책 속에서 닭에 관한 글들을 베껴 모아 차례를 매겨 ‘계경(鷄經)’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구나. 육의의 ‘다경(茶經)’이나 유득공의 ‘연경(煙經)’처럼 말이다. 속된 일을 하더라도 맑은 운치를 얻는 것은 모름지기 이것을 예로 삼도록 해라.”

뭘 하더라도 정열과 애정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산의 아들이 계경을 썼다는 말은 못 들었지만 지난주 커버스토리의 주인공이었던 하버드 로스쿨 최우수 졸업생 라이언 박은 그걸 했습니다. 매일 새로 배운 것에 대해 에세이를 썼다지요. 그러면서 지식에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인 겁니다. 그런 정열과 애정이 있다면 어떤 분야든 일가를 이루고도 남음이 있겠지요. 남과 다투거나 속일 틈도 없을 겁니다. 범절이 절로 생기는 거지요.

자, 오늘부터, 오늘을 잡으세요. 가장 자신 있는 분야를 잡아서 전력투구하세요. 평범하지 않게 나만의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세요. ‘대~한민국’의 정열과 애정을 간직한다면 틀림없이 범상치 않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이훈범 중앙일보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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