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싶은 구두 뛰어넘는 갖고 싶은 명품 만들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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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홍혜원·고인희씨(왼쪽부터)가 함께 디자인한 구두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김상선 기자]

이탈리아와 국내에서 각각 일하던 두 명의 구두 디자이너가 국내 구두업계에선 처음으로 듀오 디자이너로 나섰다. 듀오 디자이너란 하나의 브랜드를 함께 사용하며 제품을 공동으로 디자인해서 내놓는 두 명의 디자이너를 말한다. ‘헬레나 앤 크리스티’라는 공동 브랜드를 사용하는 구두 디자이너 홍혜원(34)씨와 고인희(36)씨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토종 브랜드를 만들겠다며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 데뷔했으며, 올 봄 서울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2009년 9월 프랑스의 ‘프레타 포르테 파리’에서 첫 작품을 선보였다. 세계무대를 염두에 뒀기에 아예 해외에서 먼저 데뷔한 것이다. 이들은 데뷔전부터 현지에서 통했다.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에 200여 켤레를 납품했고, 이탈리아의 유통 에이전시인 ‘스튜디오 G’와 제품 공급 계약을 했다.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각지의 편집숍(여러 브랜드의 제품을 모아놓고 파는 곳)으로도 팔려나갔다. 올 봄, 이들은 서울에 단독 매장을 내고 갤러리아 백화점에도 입점하면서 ‘금의환향’했다. 배우 전도연이 영화 ‘하녀’의 국내 VIP 시사회에서 이들의 작품을 신고 나왔다.

두 사람은 자매도 오랜 친구도 아니다. 4년 전, 몇 개월간 스쳐 지나가듯 함께 일했던 옛 동료 사이다. 회사를 나온 뒤에야 서로 상대방의 능력을 알아보고 “세계에서 인정받는 한국 브랜드의 우리 구두를 만들겠다”며 의기투합했다. 처음에는 홍씨의 H, 고씨의 K를 따서 ‘H&K’란 브랜드 이름을 지었다가 나중에 이 이니셜에 맞춰 ‘헬레나 앤 크리스티’란 브랜드 이름을 새로 만들었다.

홍씨는 해외파다. 이탈리아 돌체 앤 가바나에서 4년 동안 구두 디자이너로 일했다. 대학에선 세라믹 공예를 전공했지만 이탈리아의 ‘인스티튜트 마랑고니’에서 가방과 구두 디자인을 다시 배운 뒤 이탈리아에서 7년 동안 실무를 익혔다.

고씨는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한 뒤 국내 업체인 에스콰이어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 뒤 소다·타임·오브제 등 구두·패션 브랜드에서 14년 동안 경력을 쌓았다. 상상력이 발랄한 홍씨가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스케치로 내놓으면, 꼼꼼한 고씨가 가죽이나 디테일 등 실용적인 면을 보완해 구두로 만들어낸다. 홍씨는 “창의적인 면과 조형적인 면을 분업한다”고 설명했다. “듀오라서 어렵지 않으냐”고 물으니 고씨는 “듀오라서 더 쉽다”며 “서로 다르단 점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없는 점을 보완해 더 좋다”고 답했다.

이들의 목표는 뚜렷하다. 홍씨는 “세계적인 구두 브랜드인 ‘지미추’나 ‘마놀로 블라닉’을 넘어서는 월드클래스 명품구두를 한국 디자이너의 손으로 만들어 내겠다”라고 말했다. 고씨는 “신어서 없애는 구두가 아니라 소유하고 싶은 예술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꿈도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우리보다 브랜드의 수명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나타냈다.

글=이진주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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