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월드컵 마케팅>라이벌 場外싸움 뜨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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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KTF 대 SK텔레콤전, 아디다스 대 나이키전, 질레트 대 쉬크전, JVC 대 올림푸스전…'. 요즘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축구시합이 아니다. 기업들이 장외에서 벌이는 마케팅 싸움이다.

월드컵은 연인원 4백20억명의 눈길이 집중되는 지구촌 최대 행사의 하나. 라이벌 기업들은 이번 월드컵 마케팅전에서 한번 밀리면 실지(失地)를 회복하기 힘들다고 보고 총력전을 펴고 있다.

특히 한국팀이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선전해 16강 진출도 가능하다는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면서 마케팅 전략을 다시 짜는 등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라이벌 장외 싸움 가열=국내 시장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은 이동통신 업계. 먼저 도전장을 낸 업체는 국내시장 점유율 2위인 KTF다.월드컵을 계기로 판도를 뒤집겠다는 의욕이다. KTF는 1위 업체인 SK텔레콤에 앞서 발빠르게 월드컵 공식후원업체가 됐다.

월드컵이 젊음의 축제로 이동통신의 주고객층인 10~30대를 집중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다. 국내시장에서 선두업체인 SK텔레콤을 이번 기회에 따라잡겠다는 전략이다. KTF는 지난달부터 월드컵에 맞춰 경품행사를 벌여 가입자가 평소보다 20% 가량 늘어났다. KTF 관계자는 "이같은 증가율은 업계에서는 대단한 수치"라며 "특히 스코틀랜드와의 평가전을 전후해 신규 가입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SK텔레콤도 월드컵 공식파트너인 KTF에 맞대응하기 위한 광고전으로 역풍을 일으키고 있다.

SK는 영화배우 한석규와 붉은악마 응원단을 등장시킨 광고로 KTF에 못지 않게 월드컵 붐에 편승하고 있다.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응원전을 내용으로 한 광고로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이동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월드컵 열기가 이제 막 시작돼 두 업체간 싸움의 향배를 판단하기는 아직 힘들다"며 "그러나 이번 광고전에서 시장판도에 큰 변화가 일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세계축구연맹(FIFA) 규정상 월드컵을 활용한 마케팅을 펼 수 있는 기업은 전세계에서 21개뿐이다. 전세계의 15개 공식 파트너와 국내의 6개 지역 파트너가 전부다.

이들은 막대한 공식 파트너 선정비용을 지출하고 대신 엠블럼을 광고 등에 배타적으로 사용하는 권한을 받았다.

그렇다고 여기에 동참하지 못한 기업이 두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까다로운 규정을 피하면서 구사할 수 있는 마케팅이 얼마든지 널려 있다.

이들은 공식 파트너와 달리 엠블럼·로고 등을 쓰지 못하고 '월드컵'이란 단어 자체를 아예 사용할 수 없다. 이를 어길 경우 당장 막대한 피해보상 소송에 휩싸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이른바 '매복(Ambush) 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다국적기업들은 더 치열한 접전=매복 마케팅 기법을 가장 잘 쓰는 기업은 공식 파트너인 아디다스의 경쟁사인 나이키다. 세계 스포츠 상품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두 회사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할 때마다 치열한 영역확장 다툼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이키는 비록 공식 파트너는 아니지만 이에 못지 않은 전략으로 맞선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결승전에 오른 브라질 대표팀에 4천만달러 상당의 후원계약을 하고, 파리 라데팡스 지역에 '나이키 파크'를 만들어 광고효과를 톡톡히 봤다. 전문가들은 공식 파트너로 '홍수 광고'를 쏟아붓고 있는 아디다스보다 더 짭짤한 효과를 얻었다는 분석이다.

나이키는 이번 월드컵에서도 똑같은 전략으로 한국팀을 비롯한 8개 대표팀을 후원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전시장에 미니 축구와 디지털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는 나이키 파크를 지난 26일 개장했다.

공식 파트너인 질레트와 경쟁업체인 쉬크의 면도날 싸움도 치열하다. 질레트는 '질레트가 밀어준다! FIFA 월드컵'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인터넷 등 다양한 형태의 광고로 소비자를 사로잡고 있다.

반면 쉬크는 틈새공략을 벌이고 있다. 쉬크는 월드컵 관련 업무로 분주한 경찰서·소방서·구청 등지를 돌며 면도·스포츠 마사지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카메라 업체인 올림푸스도 공식 파트너인 일본 JVC의 독주를 막기 위해 각종 행사를 마련했다.

김시래·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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