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도 "아니벌써 폐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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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결혼 3년째인 K씨(28·여). 결혼 1년만에 생리가 끊겼다. 극도의 불안감 속에 서울 G병원을 찾은 K씨의 진단명은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조기 폐경. 아기를 갖길 원한 K씨는 다른 여성의 난자를 제공받아 시험관 아기를 낳았다. 그는 요즘도 조기 폐경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여성호르몬을 복용 중이다.

두 아들을 둔 주부 Y씨(35·여)는 서너달 전부터 생리가 실종됐다. 그는 여성으로서의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한 나머지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고민 끝에 P한의원을 방문한 Y씨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가(假)폐경'(치료 가능한 일시적 무월경)이라는 진단을 받고 한시름을 덜었다.

한국 여성의 평균 폐경 연령은 48~52세(48.2세)로, 45~55세 폐경까지 정상이다.

그러나 남들보다 10년 이상 일찍, 45세 이전에 조기 폐경을 맞는 여성이 1~3% 쯤 된다. 가임(可姙)여성 중 6개월~1년 이상 월경이 끊기면 이 병으로 진단된다. 이들 가운데는 30대, 심지어 20대에 폐경을 맞는 여성도 있다.

강남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가 지난 5년간 조기 폐경 환자 6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평균 연령이 30.3세였으며 21세 여성도 있었다.

조기 폐경의 절반은 원인을 모른다. 원인이 밝혀진 것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은 류머티스성 관절염·갑상선 기능항진증 등 이른바 자가(自家)면역질환. 이 병이 있으면 면역시스템의 고장으로 생긴 항체들이 여성 자신의 난소를 무차별 손상·파괴시킨다.

성염색체(X염색체)가 정상(2개)보다 하나 적거나(터너증후군) 많을 때도 조기 폐경 위험이 높다. 방사선 치료·항암제 복용·수술 등으로 난소가 손상된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방에서는 신장(비뇨·생식기)의 기능이 떨어지고 심장·간·췌장 등 오장육부(五臟六腑)의 기(氣)가 허(虛)한 여성에게 조기 폐경이 온다고 본다(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 원장).

삼성제일병원 갱년기클리닉 윤현구 교수는 "3개월 이상 생리가 없으면 바로 병원을 찾아 혈액검사 등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며 "방치할 경우 조기 폐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최근 들어 조기 폐경이 늘어나는 추세다. 여성들이 독성 오염물질에 더 자주 노출되는 것이 원인이라는 견해도 있다. 여성의 흡연,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것과 관련 있다는 가설도 나왔다(강남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 남윤성 교수).

강서미즈메디병원 산부인과 이경호 과장은 "조기 폐경이 오면 단기적으로 안면홍조·질(膣)의 건조함·성욕 감퇴·위축성 질염 등이 나타난다"며 "특히 골다공증이 빠르게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대처하나=조기 폐경으로 진단되면 심장병·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위해 꾸준하게 운동하고 기름진 음식 섭취를 줄이며 금연하고 칼슘제를 복용하는 것이 좋다.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치료도 고려해야 한다.

이들은 에스트로겐을 정상 폐경 여성의 두배나 복용해야 하므로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에스트로겐을 10년 이상 장기 복용하면 유방암 발생 위험이 20% 높아진다는 조사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 자궁내막암 등의 예방을 위해 황체호르몬(프로게스테론)을 함께 복용해야 한다.

에스트로겐을 복용한 후 월경을 다시 하는 여성도 있다. 그러나 이때 배란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조기 폐경으로 진단받아도 적절히 치료받으면 일부는 자연임신이 가능하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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