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미술·비주얼 뭉쳐 '온라인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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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 남자의 손바닥에는 시커먼 페인트가 묻어 있다. 한 여자는 형광빛 털코트를 입고 셀프 카메라를 찍느라 바쁘다. 또 한 사람은 무표정이다. 검은 손자국이 찍힌 티셔츠를 입고 온 첫번째 사내는 뮤지션 미로(MIRO). 여자는 "아티스트 낸시 랭이예요. 낸시랭 닷 컴으로 오세요"라며 노래하듯 자신을 소개한다. 나머지 한 사람은 비주얼 아티스트 아이가(AIGA.본명 김현석). 이 세 사람을 묶는 이름은 '이스트 에라(East Era)'다.

미로는 재즈 아티스트 척 맨지오니의 음악을 샘플링한 '필 소 굿(feel so good)'으로 화제가 됐던 인물. MR-J란 이름으로 음반을 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매니저의 주문대로 고치다 보니 처음에 만든 제 음악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더군요. 기획사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다음에 하고 싶은 음악을 하라고 하죠. 그렇지만 어느날 갑자기 예술을 한다면 누가 인정하겠어요."

진짜 "내 음악"이라 말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었다. 음악에 맞을 법한 뮤직비디오 감독을 찾아나섰다. 눈에 들어온 것이 조PD의 '비밀일기' 뮤직비디오를 만든 김현석 감독.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조합한 독특한 연출로 주목받았다. 그는 미국 뉴욕의 'WooArt' 영상회사에서 조감독을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명 영상 회사에 들어갔지만 '상업성'의 벽에 부딪혔다. 그래서 프리랜서의 길을 택했다.

두 사람은 뜻이 잘 맞았다. 그러다 우연히 낸시 랭을 알게 됐다. 낸시 랭은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받지도 않았으면서 '초대받지 않은 꿈과 갈등:타부 요기니'란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가부키 화장을 하고 하이힐에 속옷을 입은 채 바이올린을 켜는 퍼포먼스는 초대받은 작품보다 더 화제가 됐다. 두 남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표현하는"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함께 작업하자고 제의했다.

이들은 환각.나태.고정관념 등 '일곱가지 죄악'이란 주제로 공동 작업을 하기로 했다. 첫번째 작품인 '모프(morph)'는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음악사이트 펀케익(www.funcake.com)에 23일 공개됐다. 다음달에는 '고정관념'이란 주제를 사진.퍼포먼스.미술.소리.영상 등으로 표현하는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이후 계속되는 활동과 작품은 펀케익에서 소개된다. 오프라인을 넘어 인터넷을 실험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글=이경희,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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