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앞다퉈 貸金業 채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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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은행들이 앞다퉈 대금(貸金)업 진출을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고금리 시장에서 신용카드회사·상호저축은행·사채업계와 한차례 격전을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계에 따르면 국민은행을 비롯해 씨티그룹의 씨티파이낸셜, 신한지주와 BNP파리바가 합작한 세텔렘, 한미은행 등이 대금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최대 은행이며 소매금융에 주력해온 국민은행은 소액 급전 대출이 필요하거나 신용도가 떨어져 사채업체를 찾아가는 직장인에게도 돈을 빌려주는 자본금 3백억원 정도의 소비자금융회사를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미은행은 지난 23일 이사회를 열어 자본금 2백억원 규모의 소비자금융회사를 7~8월 중 세우기로 했다. 한미은행은 먼저 직원 5~6명을 둔 작은 지점 2~3개를 열고 2~3개월 동안 시험기간을 거친 뒤 점포를 더 낼지 결정할 방침이다.

신한금융지주회사도 7월초 프랑스계 BNP파리바그룹의 자회사인 세텔렘과 합작으로 소비자금융회사를 세울 예정이다.

씨티그룹은 신용대출부문 자회사로 씨티파이낸셜코리아를 세우고 우선 서울 명동에 사무실을 내 월급생활자를 주대상으로 연 20%대에 3백만원 안팎의 대출 상품을 주로 취급할 방침이다. 장사가 잘되면 수도권 등으로 영업망을 넓힐 계획이다.

은행들이 대금업에 나서려는 큰 이유는 고객 층을 넓힐 수 있는 데다 저금리 시대에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사채업체들보다 크게 낮은 연 30%를 받는다 해도 연6% 안팎의 부동산담보대출이나 연 10% 안팎의 신용대출에 비해 매우 높다. 연 20~23% 수준인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수수료율보다도 높다.

그러나 고객의 신용도가 낮을 수밖에 없어 돈 떼일 위험이 크다는 점이 은행들의 고민이다. 또 대금업체는 예금을 받는 수신기능은 할 수 없어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차입금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조달금리를 낮추는 것도 관건이다.

국민은행과 신한금융지주회사 등이 대금업체와 함께 개인 신용정보를 가공하고 채권추심 업무를 하는 신용정보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한편 금융감독위원회는 은행이 대금업에 진출하기 위해 별도의 자회사 설립을 신청해오면 은행의 공공성과 국회에 계류 중인 대부업법의 입법취지 등을 종합해 허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위 관계자는 "사금융 의존도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은행마저 고리대금업으로 서민의 부담을 가중한다는 여론도 예상돼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며 "은행의 대금업 진출이 가계대출 증가에 미치는 영향 등 총체적인 점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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