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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봉사의 마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두 주일 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국제공동모금협의회(United Way International)의 총회가 열렸다. 세계 45개국의 단체가 가입돼 있는 이 조직에 우리나라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가 회원이어서, 필자도 대표단의 일원으로 이 총회에 참가했다. 이 회의에서 접한 두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南阿共 바꾼 여대생 죽음

에이미(Amy)라는 미국 대학생은 성적도 좋고 다이빙 선수였던 모범생으로서 캘리포니아 대학 재학 중에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이 백인 여학생은 당시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에 관심이 있어서 그 해를 남아공에서 보내기로 한다. 1993년 어느 날 넬슨 만델라의 석방을 주장하는 가두 시위에 참가하고 있던 에이미는 몇 명의 흑인 청년에 의해 칼에 찔려 죽는다. 에이미를 살해한 이들은 당시 흑인 과격단체에 속해 있었으며 백인을 죽이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알고 있었다. 이들 중 네 명이 에이미의 살해범으로 기소돼 얼마 후 18년 감옥형을 선고 받고 수감된다.

인종폭동 사태에 직면해 있던 남아공에서 흑인 편을 들었던 백인 처녀의 피살은 사회 분위기를 반전시키면서 에이미의 친구들이었던 흑인들과 백인들을 단결시키고 전국적인 평화운동을 촉발하게 됐다. 딸의 죽음과 그에 이은 평화운동을 목격하게 된 에이미의 부모는 특히 남아공의 흑인 청소년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의 돈과 추가 모금을 통해서 약 50만달러를 모아, 이 돈으로 딸의 이름을 딴 재단(Amy Biehl Foundation)을 만들게 된다. 이 재단은 그 이후 남아공 빈민촌 청소년의 직업교육사업을 벌이면서 현재 15개 과정에서 수천명의 청소년에게 직업훈련을 시키고 있다.

에이미 살해범들은 형무소 복역 4년 반 만에 사면을 받고 출감하게 되고, 에이미의 부모도 이 사면 과정에서 이들 청년의 석방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 이후 에이미의 부모는 남아공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딸의 죽음을 가져온 이 나라의 인종차별과 빈곤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우리가 참가한 총회 폐막식에서 에이미의 모친과 살해범 청년 한 명이 같이 참석해 지금까지의 상황을 담담히 설명하는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약 1천7백만명의 아프리카인이 에이즈로 죽었다고 한다. 그 중에는 3백70만명의 어린 아이들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에이즈 때문에 부모를 잃게 된 소위 '에이즈 고아'가 아프리카 남부에만 1천2백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에이즈에 감염된 엄마가 출산한 아이들 중에서 약 40%가 태어나면서 바로 이 병을 앓게 된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부루어 부부는 수 년 전에 이들 에이즈 고아들을 돕기 위해 고국에서의 직업을 정리하고 남아공에 와서 '아름다운 문'이라는 고아원을 열게 된다. 우리 총회 참가자들은 회의 기간 중에 여러 복지시설을 방문했는데 필자도 이 고아원을 찾게 됐다.

에이즈 고아 단 5년의 삶

끝없이 펼쳐진 빈민 판자촌의 구석에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이 고아원에 수용된 아이들은 50명 정도 된다고 하는데, 모두가 6살 미만의 어린 아이들이다. 에이즈에 감염돼 태어난 아이들은 태반이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한다. 많이 아파서 병원에 두 번 정도 다녀오게 되면 다음에는 하늘나라에 가는 것으로 어린 아이들이 알고 있다고 한다. 방문이 끌날 때쯤에 부루어 부인이 한 말이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이 아이들의 수명은 길게 보면 5년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이 아이들이 5년이라는 일생을 그나마 행복하게 인간적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30대의 젊은 부부가 모든 것을 희생하고 먼 나라에 와서 에이즈 고아들을 보살피는 현장이 '아름다운 문'이다. (www.beautifulgate.org)

월드컵대회가 이번 주에 개막된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이 대회와 한국에 관심을 보였다. 우리 모두 용서와 봉사의 마음으로 이 세계적인 축제를 치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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