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照明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을 본 관객들은 센강에 있는 퐁네프 다리의 야경에 감탄하면서 언젠가는 그곳에 서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갖는다. 영화 제작자들은 이 다리의 밤 장면 촬영에 많은 돈을 들였다. 사랑과 매혹의 밤을 표현하기 위해 센 강변의 멋진 야경을 배경으로 한 퐁네프 다리의 인공세트까지 설치했다.

홍콩의 아픈 역사를 남녀의 사랑으로 표현한 영화 '유리의 성'에도 화려한 밤을 무대로 한 장면이 연속적으로 깔린다.이 영화의 주제가 '기억해 보세요(Try to remember)'는 빅토리아 항구의 아름다운 밤 경치를 떠올리게 한다. 두 영화의 특징은 제작과정에서 해당 도시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는 데 있다.

어느 나라가 더 매혹적인 밤을 연출하느냐가 요즘 관심거리다. 파리에서 남쪽으로 40㎞ 거리에 위치한 리옹이라는 작은 도시는 13년 전에 '아름다운 빛의 도시'를 선거공약으로 내건 메셀누아르를 시장으로 선출한 후 야간 관광명소로 도약했다. 야간 조명작업이 시작되면서 관광객이 늘어나고 시의 재정도 풍성해졌다.

1970년대부터 '라이트 업 템스(Light up Thames)' 계획에 따라 야간 조명에 들어간 영국은 템스강 언저리뿐 아니라 주요 박물관과 건축물, 궁전 등에 불을 밝히기 시작했다. 겨울밤이 긴 북유럽의 스웨덴과 핀란드 주요 도시들의 야간조명은 자연과 역사물을 배경으로 환상적인 밤을 꾸며냈다. 호주의 시드니와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등은 독창적으로 설계된 건축물에 대해서까지 조명시설을 늘리고 전력 요금 지원대책도 마련했다. 일본의 도쿄(東京)와 요코하마(橫濱)도 아름다운 밤을 만들기 위한 경쟁이 뜨겁다.

월드컵 대회를 계기로 주요 문화재와 다리·공원·분수대 등에 대한 조명 시설이 진행 중이다. 역사물과 잘 조합된 선진국 수준의 미학적인 조명기술이 더 개발돼야 한다는 여론도 없지 않다. 낮보다 밤시간 활용이 늘어나는 도시민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 추세를 감안하고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야간 경관 작업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밤의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생동감 있는 문화기획도 뒤따라야 한다. 야간 조명시설도 에너지 절약형으로 개발하면 낭비 요소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특징있는 민간건물의 조명에 따른 전기료는 선진국처럼 할인제로 하거나 시가 일부 부담하는 문제도 검토해볼 만한 일이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