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학 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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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쟁의 무풍지대에 안주하고 있던 한국의 대학들이 최근 세계적인 대학으로 부상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보이고 있다. 일부 사립대학들은 특성화·정보화·세계화 등의 슬로건 아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가 하면 국립대학에서도 연봉 1억원의 외국인 교수들을 초청하는 등 과거와 다른 혁신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의 성패는 상당부분 대학 재정에 달려 있다. 우수한 교수를 확보하고, 풍부한 연구비와 장학금을 마련하는 동시에 세계적 수준의 연구 및 교육 시설을 구축하기 위해 등록금 이외의 추가 재원 확보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대학의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국립·사립대학 할 것 없이 발전 기금의 규모가 보잘 것 없을 뿐 아니라, 있어도 대부분 꼬리표가 달려 있어 학교 발전을 위해 포괄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윌리엄스라는 미국의 한 대학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윌리엄스 대학은 전체 학생수가 2천명밖에 안되는 매사추세츠주 소재의 조그만 4년제 인문대학이다. 그러나 이 대학이 보유하고 있는 대학발전 기금은 2001년 현재 물경 13억4천만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조7천억원에 달하는 거금이다. 이 기금은 거의 전적으로 동문들에게서 온 것이다. 이 대학 졸업생의 75% 정도가 매년 모교에 기부금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동문들의 모교 사랑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상호주의에 있다. 동문들이 재학시 받은 혜택만큼 모교에 되돌려준다고 보면 될 것이다. 교육의 질이 높은 것은 말할 나위 없고 이 대학 재학생의 40%가 연 평균 2만3천2백달러 정도의 장학금 혜택을 받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 9·11 사태 이후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자 이 대학의 모톤 샤피로 총장은 미국 사립대학 중에서는 최초로 등록금 인상 동결과 더불어 지금까지 학교에서 제공하던 융자금을 모두 장학금으로 전환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했다. 흥미있는 것은 이러한 조치 발표 이후에 동문과 학부모들의 기부금 공여가 급격히 증대했다는 사실이다.

이 대학은 동문에 대한 배려 역시 극진하다. 전체 졸업생의 75%가 매년 모교에 기부금을 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학을 떠난 후에도 동문들에게 다양한 특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그 중 대표적인 것이 동문 자녀들에 대한 입학상의 특전이다. 학업 성적을 포함해 다른 조건이 비슷할 경우, 동문 자녀들을 우선 선발한다는 것이다. 나의 지인 한분은 조부·부친·형제·부인,그리고 두 자녀 등 4대에 걸쳐 모두 윌리엄스 출신이다. 이 같은 특전이 주어지는 만큼 모교에 대한 사랑과 충성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재학생과 동문에 대한 배려와 유인책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대학 자체의 안정성이다. 윌리엄스의 경우 1793년 개교 이래 지금까지 2백9년 동안 16명의 총장들을 배출했다. 평균 임기가 13년인 셈인데 마크 홉킨스 총장 같은 이는 자그마치 36년간이나 총장으로 봉직했다. 일반적으로 대학의 안정성은 총장의 임기와 연관을 갖는다. 임기 주기에 구애됨이 없이 능력 있는 총장의 장기 비전과 지도력 아래 교수·학생·동문·학부모들이 단합해 오늘날의 윌리엄스 대학을 일궈낸 것이다.

윌리엄스 대학 사례가 한국 대학에 주는 함의는 매우 크다. 무엇보다 좋은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과 파격적인 장학금을 제공해야 한다. 엄격히 말해 이는 대학 교육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동문들에게 모교에 대한 사랑을 일방적으로 강조하기보다 다양한 유인책을 통해 이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이와 관련, 동문들을 상대로 한 기여우대제 도입을 전향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마지막으로 총장직에 대한 경직된 태도를 버려야 한다. 총장직은 순환 보직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능력 있는 총장은 10년, 20년을 재직해도 무방하다. 그래야만 대학의 장기 발전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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