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털 뽑아 자기 몸에서 발모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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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그저 환자들에게 머리카락 이식의 효과를 보여주려 했던 것인데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가 미국 의대 교과서에까지 실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서울 압구정동 CNP모발센터 원장 황성주(黃盛柱·33)씨.

黃씨가 머리카락을 몸 곳곳에 심어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쓴 논문이 오는 8월 이 분야의 세계적인 학술지인 미국 피부외과학회지에 실릴 예정이다. 그는 최근 미국 의대의 모발이식 교과서 편집진에게서 '올 가을 개정판에 연구 내용을 싣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다음달 열릴 유럽 모발이식학회(런던)와 10월에 개최될 미국 피부외과학회(시카고)에 초청받아 강연한다.

黃씨는 머리 외에 다리·목·등·손바닥 등에 머리털이 있다. 모발 이식 연구를 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아 여러 곳에 옮겨 심었기 때문이다. 그는 1998년 경북대병원 모발이식센터에서 레지던트로 일할 때 처음으로 머리카락을 이식했다.

"모발 이식을 해도 머리카락이 곧 죽지 않을까 의심하는 환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뒷머리에서 1백 가닥을 뽑아 왼쪽 종아리에 심었죠."

그는 몇달 지난 뒤 다리에 옮겨 심은 머리카락이 몹시 천천히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의학계의 통설은 머리카락을 어디에 심든 성장 속도·굵기 등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59년 미국에서 정설로 인정받았죠. 그런데 이를 뒤집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가 다리의 머리카락을 뽑아 머리에 가까운 뒷목에 심어봤더니 이것은 보통 머리카락의 성장속도를 회복했다. 심는 장소에 따라 머리카락의 성질이 변한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40년이 넘은 서구의 학설에 대한 도전장이었다. 黃씨는 이런 연구 결과를 지난해부터 국제 모발이식학회 등에서 발표했다. 지금까지 그가 옮겨 심은 것은 5백여 가닥.

그는 "유전적으로 나도 머리가 벗어질 공산이 큰데, 자꾸 다른 데로 머리카락을 옮겨심자니 꺼림칙하기도 했다"며 "그러나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자꾸 이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의학적으로 검증받은 탈모 치료제는 '프로페시아'와 '미녹시딜' 두가지 뿐"이라며 "그밖의 약을 쓰는 사람들도 많은데 의사로서 자제할 것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권혁주,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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