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잔여금? 사업자금? 홍업씨 돈 정체 아리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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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태재단 부이사장 김홍업(金弘業)씨 돈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검찰 수사가 주춤거리고 있다.

자금의 정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홍업씨의 혐의와 향후 수사 규모·기간이 달라지는데, 아직 명쾌한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김홍걸씨 수사와는 달리 관련인물들의 진술이 혐의 입증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검찰은 말한다. 검찰은 23일 브리핑에서 수사가 장기화할 수 있음을 밝힘으로써 규명 작업이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

◇모호한 돈 성격=홍업씨의 변호인인 유제인(濟仁)변호사는 22일 홍업씨의 돈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 해명했다.

홍업씨가 1995~97년 선거 홍보 사업체인 '밝은세상'을 운영하며 경영·활동 자금으로 10억원대의 돈을 댔고, 대선이 끝난 98년 초 이 업체를 청산하며 회사 자금으로 남아 있던 10억원대의 돈을 돌려받았다는 것이다.

"'밝은세상'을 운영하며 받은 대선 자금 잔여금이 상당히 있었다"는 종래 측근들의 해명과 조금 다르다. 사재(私財)에서 출연했기 때문에 '대선 자금'이라는 개념보다 일종의 '사업 자금'이라는 것이다.

홍업씨가 안게 될 부담은 두 경우 각각 달라진다.

문제의 돈이 홍업씨 개인 돈이었고, 이를 '밝은세상'에 넣었다가 회수했다면 사실상 적용할 혐의는 없어진다.

그러나 후원금 등으로 조성한 대선 자금의 잔여금일 때는 후원금에 대한 조세 포탈 죄가 적용될 수 있고, 거기에 정치적인 부담도 더해진다. 대선 자금의 규모와 출처에 대한 논란이 예측불허로 커지는 사태가 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문제의 돈이 이권 개입의 대가로 나타날 경우엔 알선수재 등의 명백한 범죄가 돼 홍업씨는 사법처리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홍업씨측에선 최악의 상황이다.

◇제기되는 의문들=홍업씨측 해명에도 불구하고 '수상한 돈'에 대한 의구심은 줄어들지 않는다.

우선 홍업씨가 땅을 팔고, 저축금을 털고, 인척에게서 융통해 10억원 이상의 돈을 '밝은세상'에 투자했다는 것 자체가 입증되지 않고 있다.

'밝은세상'을 함께 운영했던 홍업씨의 한 측근은 23일 "자본금이 1억원에 불과해 설립에 큰 돈이 들지 않았으며, 홍업씨가 큰 돈을 낸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변호사는 "선거 활동과 관련된 성격의 돈이라서 주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정확히 알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홍업씨 돈으로 보는 자금규모와 홍업씨 측에서 밝히는 규모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것도 의문이다.

검찰은 "홍업씨 지시로 16억원을 수표를 현금으로 바꿨다"는 아태재단 직원의 진술과 "12억원의 현금을 수표로 바꿔줬다"는 김성환씨의 말을 근거로 28억원은 명백히 홍업씨의 돈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성환씨는 홍업씨에게서 최근 2년간 18억원을 빌렸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검찰은 또 홍업씨의 대학 동기인 유진걸씨가 차명계좌에 넣어 둔 32억원도 대부분 홍업씨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는 "홍업씨가 아태재단 직원을 통해 현금을 수표로 바꾼 16억원 중 상당 부분은 자신의 돈이라고 인정하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한다"고 말했다.

홍업씨가 자신의 돈을 세탁했다는 검찰의 설명도 의문을 더하게 하는 대목이다. 자기 돈이라면 굳이 세탁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홍업씨측은 "보관이 용이하고 쓰기 쉽도록 수표로 바꾼 것이었을 뿐 세탁은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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