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선거 눈치 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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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양대 선거를 앞두고 정부의 경제정책이 원칙을 잃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올 1분기 5.7%라는 예상 외로 높은 경제성장률이 나왔는데도 정부는 기존의 저금리 정책을 고수하겠다는가 하면, 세수(稅收)가 빠듯한데도 조세 감면을 줄이지 않고 있다.

경제정책의 핵심수단인 금리·세금정책에서 정부가 선거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전윤철(田允喆)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3일 "미국 경기상황 등 불안요인이 남아 있는 만큼 저금리 기조 등 거시경제정책의 기본 틀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경기 과열이 우려되는데도 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장은 좋아하겠지만 이는 마약과 같은 것"이라며 "결국 물가·부동산값 오름세를 유발하는 등 경제 체질을 해친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이재웅 교수는 "선거로 통화나 재정 정책이 영향받는 것보다 경제정책의 원칙을 잃는 게 더 문제"라며 "광주·경남은행의 통합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부진해진 것이 한 예"라고 말했다. 세제도 조세 감면을 줄이겠다는 정부의 공식 입장과 달리 세금을 깎아주는 일이 계속돼 정책의 일관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올들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제주도 골프장 입장료를 낮춘다며 특별소비세를 면제해줬으나 입장료는 생각만큼 안 내렸고, '우리도 낮춰달라'는 다른 지역 골프장들의 민원만 늘었다. 승용차 특소세를 6월말까지 한시적으로 낮춘 정책은 내수가 활황인 만큼 연장할 명분이 없지만 정부는 아직 입장을 유보하고 있다.

주가 부양을 위해 지난해말 세액공제 장기증권저축을 발매하는 바람에 연초에 3천억원 이상 근로소득세가 환급돼 세수에 큰 구멍이 생겼다.

경희대 최명근 교수는 "각종 이익단체나 정치권 등의 압력으로 조세 감면을 늘리기 시작하면 대신 다른 누군가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며 "감면을 줄이고, 세율을 전반적으로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상반기 끝나게 돼있던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를 연말까지 연장하면서 기업들에 설비 투자를 촉구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무리한 주문이라는 반응이다. H사 관계자는 "정부가 세금을 깎아준다고 하나 선거철을 맞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선뜻 투자에 나설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고현곤·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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