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계천 복원 : 재개발 기로에 선 '낙후' 도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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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차기 서울시장 후보들의 공약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는 청계천은 도심 속의 '섬'이다. 종로와 을지로에서 달려오던 스카이라인도 이곳에선 뚝 끊긴다.

대신 3~7평짜리 코딱지만한 점포들이 광교에서 동대문까지 5.8㎞에 걸쳐 있다. 청계천로 뒤편에도 휘어진 골목길을 따라 자그마한 점포들이 그물망처럼 얽혀 있다. 건물 10개동 가운데 7개동은 지은 지 30년이 넘었다. 강북 최대 도심인 종로나 새로 개발된 동대문운동장 일대와 이웃하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20일 찾은 청계천 상가 앞 인도는 온갖 공구와 상인들이 내놓은 물건들로 가득했다. "짐이요, 짐!""비켜요, 비켜!"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힘겹게 다녔다.

행인들은 몇 발짝 걷다가 길을 피하기 일쑤였다. 20년째 공구상을 운영하는 김명수(52·종로구 관철동)씨는 "청계천 점포의 상당수가 도매상에다 쇳덩어리 장사여서 물건을 길가에 내놓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청계로를 따라 20분쯤 걷다 보면 목이 매캐해진다. 청계고가로 하루 12만대의 차량이 달리는 데다 고가 아래 복개도로에도 하루 7만대의 차량이 다니기 때문이다. 도로와 양옆의 건물이 U자꼴을 이루고 고가도로가 뚜껑처럼 위를 덮고 있어 매연으로 인한 미세먼지와 일산화탄소 등이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

청계천 일대에서 하늘을 보기도 쉽지 않다. 청계고가가 시야를 가려 길 건너 건물은 2~3층까지밖에 보이지 않는다. 길을 가던 천대영(25·회사원)씨는 "이곳은 언제나 답답하다"며 "특별히 볼 일이 없는 한 청계로를 잘 다니지 않는다"고 말했다.

광교에서 세운상가·광장시장·방산시장으로 이어지는 청계천 일대는 고질적인 주차난으로 몸살을 앓는다. 도로 옆 점포에 짐을 싣고 내리는 화물차들로 양쪽 1개 차로는 아예 차량통행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왕복 6차로의 복개도로는 4차로나 다름없다.

청계고가도 가까이 다가가 보면 곳곳에 땜질한 흔적이 아주 많다. 주한미군은 아예 미군차량의 통행을 금지했다. 당초 30t 무게를 떠받치도록 설계된 이 고가가 현재 12t밖에 견디지 못해 서울시도 청소차·유조차·화물차의 통행을 막고 있다.

쓸만한 가게들이 용산전자상가로 옮겨가면서 세운상가 2층은 포르노물 판매상이 판을 쳐 청계천 뒷골목을 더욱 어둡게 했다. 그러나 청계천 일대는 아직도 수만명에 달하는 상인들의 소중한 터전이다.

청계천 재개발에 대한 이들의 불안감은 컸다. 부품상을 운영하는 고수철(54)씨는 "청계천이 복원되기까지 장사는 공치게 마련"이라며 "공사가 진행되는 몇년 동안 누가 생계를 보장하겠느냐"고 말했다.

설사 현대식 빌딩으로 재개발된다 해도 영세 상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청계천에서 일한 지 30년이 넘었다는 이명훈(60)씨는 "빌딩 사무실에 들어갈 만한 업종도 없고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처지도 아니다"며 "주변에 쁘렝땅백화점과 한화빌딩이 들어설 때도 그 자리에 있던 소규모 인쇄소들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고 우려했다.

반면 도로변에서 30~50m쯤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점포의 상인들은 반사이익을 기대하며 개발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구상민(48·상인)씨는 "고가와 무질서하게 배치된 상가들로 청계천이 갈수록 슬럼화한다"며 "청계천 재개발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곳에는 10명 중 9명이 건물 소유주가 따로 있는 임대상인이다. 그중에는 서울 외곽에 대형창고를 갖고 값비싼 승용차를 굴리는 도매상들이 있는가 하면 영세 상인과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노점상도 많다.

하지만 지은 지 30년이 넘은 청계고가는 서울의 동서를 잇는 '교통동맥'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매년 20억원의 보수비용이 들어가지만 도로망이 취약한 서울의 강북에선 동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다.

청계고가는 또 내부순환로·동부간선도로와 연결되고 강북에서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되는 주요 접근로다. 서울시 고위 간부는 "청계고가가 없으면 강북지역에서 서울 외곽으로 곧장 빠지는 도로망이 사라져 결국 도심의 교통혼잡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종로3가와 청계천을 잇는 지점에는 '관수교(觀水橋)'라는 돌비석이 공해에 찌든 채 힘겹게 서 있다. '청계천의 맑은 물을 바라보던 도성 제일의 아름다운 다리'라는 문구가 서울시장 선거로 갈림길에 선 청계천의 운명을 떠올리게 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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