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하고픈 역은 슬픈 멜로 주인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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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신인 배우 권상우(26)는 욕심쟁이다. 액션·멜로·코미디 등 전장르에 어울리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출연한 영화가 이제 '화산고''일단 뛰어' 두 편뿐인데 마음이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신인치고는 늦게 데뷔했잖아요. 일단 뛴 만큼 향후 2년 정도는 정신 없이 계속 뛸 겁니다. 또 흥행 배우라는 타이틀도 얻고 싶고요. 그래야 차기작 캐스팅도 쉽지 않겠습니까." 권상우가 심상치 않다. 최근 종료한 SBS 드라마 '지금은 연애 중'에 이어 지난 주말 개봉한 영화 '일단 뛰어'로 폭발적 인기를 모으고 있다. '스파이더 맨''집으로…''취화선'등의 쟁쟁한 작품 속에서도 '일단 뛰어'는 개봉 1주만에 전국 4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일단 뛰어'의 가장 큰 수혜자는 권상우다. 이미 스타의 자리를 굳힌 송승헌, '달마야 놀자'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의 고시생으로 나온 김영준과 공동 주연했지만 관객들은 영화에서 '언니'들에게 몸을 팔고, 또 하늘에서 떨어진 21억원의 거금을 '꿀떡'하자고 제안하는 고교생 우섭을 연기한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특히 그의 군살 하나 없는 다부진 체격을 보려고 여고생부터 아줌마까지 많은 여성팬이 극장을 찾고 있다. 그는 "몸 하나는 승헌이(권상우와 송승헌은 동갑이다)에게 결코 뒤지지 않잖아요"라며 자랑도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속살이 차 있어 보였다. 요즘 고민이 많고 마음도 불안하다고 했다. 촬영 중에는 부담이 별로 없었는데, 막상 영화가 개봉되니 "손님이 많이 들어야 할텐데"라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자비로 친구들과 함께 극장을 벌써 세번이나 갔다고 털어놓는다.

권상우의 무기는 친근함과 귀여움이다. 이목이 또렷한 얼굴에 장난꾸러기 같은 천진한 웃음이 매력이다. 게다가 겸손함까지 갖췄다. "잘 생긴 편은 아닙니다. 조각처럼 완벽한 얼굴이 아니죠. 그런데 한석규 선배나 설경구 선배를 보세요. 외모가 뛰어나 훌륭한 배우가 됐나요. 두 선배처럼 어느 배역에서나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는 연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권상우는 일단 내년까지 쉬지 않고 뛸 작정이다. 다음주에 SF 멜로극 '데우스 마키나' 촬영에 들어가고, 11월 중 크랭크인할 신작까지 일정이 꽉 차 있다.

"1998년 제대(그는 논산훈련소 조교 출신이다)후 패션 모델로 연예계에 들어왔어요. 짧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설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드라마에서도 조연으로만 나왔잖아요. 영화로 자리를 확실히 잡고 내년엔 근사한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을 겁니다."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고 바로 드러내는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무척 신중해 보였다.덜렁덜렁대는 '일단 뛰어'의 우섭과 실제의 그 사이엔 큰 거리가 느껴졌다. "담배는 못합니다. 술도 세지 않아요. 운동 후에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애써 만들어놓은 근육이 분해되잖아요."

그는 여러 장르 가운데 슬픈 멜로를 소망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주로 노출된 밝고 명랑한 캐릭터보다 인생의 고단함이 느껴지는 사랑을 표현하는 데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예쁘게 포장된 멜로, 무스를 잔뜩 바르고 나오는 멜로는 정말 싫어요. '배용준식 멜로'를 좋아하지 않죠. 하류층의 처절한 삶을 표현하는 데 꼭 도전할 겁니다."

그러다가 "배용준 선배에게 혼나겠다"고 하자 "그래도 제가 좋고 싫어하는 건데 어떡하죠"라며 살짝 웃는다.

그는 현재 한남대 미술교육과 4학년생. 전공은 동양화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 그렇지만 나중에 여유를 찾으면 반드시 그림에 열중하겠다고 했다.

영화 출연료로 20일 전 구입한 50㏄짜리 스쿠터가 그의 재산 목록 1호다.

글=박정호,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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