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장남원 작품전 ‘해(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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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수중 사진의 개척자이자 1세대인 장남원씨가 필리핀 세부 바닷속에서 찍은 정어리떼와 잠수부. 30여 년을 깊은 바다 속에서 물고기들과 놀며 반백이 된 장씨는 “나에게 아낌없이 베푼 나의 오랜 친구, 바다를 이제 여러분에게 소개한다”고 했다.

시퍼렇다 못해 검푸르다. 바닷속을 뒤덮은 은빛 고기떼는 하늘을 떼지어 날아가는 철새무리처럼 보인다. 장엄한 바다다. 기막힌 바다다. 뤽 베송 감독의 영화 ‘그랑 블루(Le Grand Bleu)’를 떠오르게 하는 ‘거대한 파랑’이 보는 이를 전율케 한다.

장남원 작가

30여 년 바다 속을 찍어온 사진가 장남원(60·중앙일보 보도사진 전문위원)씨는 “바다의 위대함에 아무 말도 못한다”고 했다. 어떤 땐 포근하다가 어느 땐 무섭기도 한 바다가 너무 좋아서 말문이 막힌다. 수중 사진가 장씨의 부리부리한 얼굴을 보고 후배들이 지어준 별명이 ‘고릴라’다. 고릴라는 왜 바다로 갔을까.

“신문사 말단기자 때 물속으로의 여행을 시작했죠. 물속이 그렇게 궁금하고 들어가 보고 싶었어요. 고요한 바다 속에서 사진작업을 하고 있으면 슬픔을 잊을 수 있어요. 텅 빈 마음 한 구석이 채워져요. 바다는 무한정 베풀어주죠. 날 이만큼 키워줬어요. 그 신세를 갚을 길이 없어서 겨우 생각해 낸 것이 우리가 어울려 놀 때 찍은 기념사진을 물 밖 세상에 보여주는 거죠.”

장남원 사진전 ‘해(海)’는 한국 수중사진의 개척자이자 1세대인 장씨의 바다 사랑을 보여준다. 7월 2일부터 18일까지 서울 명동 롯데갤러리에 그가 펼쳐놓을 대형 사진들은 바다의 선물이다. 바다를 배우러 집을 나섰던 젊은이가 반백이 돼 돌아와 내미는 그 사진들에는 지구상 마지막 남은 보물창고가 우리에게 말없이 들려주는 메시지가 있다.

“바다는 조물주가 만든 자연 박물관이죠. 얼마나 신비스럽고 아름다운지…. 별별 것이 다 있어요. 그 숨겨진 것들이 다 나오면 지구는 끝납니다. 미련한 인간들만 그걸 몰라요. 바다는 그래도 우릴 기다려주고 있답니다.”

깊은 바다 속에 머물며 사진을 찍느라 입이 돌아간 적도 있다. 청력도 떨어졌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건 때를 맞추는 일이다. 거대한 몸집의 혹등고래를 한 번 만나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같은 자연을 찍어도 소나무는 그 자리에 늘 서있지만 바다 속 풍경은 늘 변하기 때문에 “망망대해를 찾아 다니는 수중 사진가의 마음을 ‘육상 사진가’는 이해 못할 것”이라고 했다. 긴 준비와 긴 기다림의 고통조차 달콤하게 만드는 바다 속에서 그는 무엇을 생각할까.

“내가 개해제(開海祭)란 말을 만들었어요. 새해 첫날 바다를 열고 들어간다는 뜻이죠. 그 축문이 제 마음이죠. 뭇 산 것의 어머니시여, 당신의 가이없는 지혜와 자비와 힘을 기리나니, 비움으로 채우시고 감춤으로 기르며 흐름으로 살리시는 그 크신 덕이여, 그 슬기 배우고 힘 얻어 살고자 올해도 당신 품에 몸 던져 잠기오리니 가슴 열어 안아 따사로이 이끄소서.”

전시에 맞춰 나온 사진집 『MARE 海』(사진예술사 펴냄)는 한국 수중 사진의 격을 보여주는 첫 결실로 일본 도쿄의 동경도사진미술관 등 해외에서 먼저 관심을 보이고 있다. 02-726-4428.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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