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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킹''인어공주'… 2D 애니 신화 끝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미국 드림웍스의 신작 애니메이션 '스피릿'의 개봉을 앞두고 최근 로스앤젤레스의 한 호텔에서 관계자 인터뷰가 열렸다.

작품 속 주요 캐릭터인 암말을 그린 한국인 리처드 김은 기자들을 마주하자마자 대뜸 "이 작품이 잘돼야 우리가 산다"고 말했다. "너무 회사측 입장만 대변하는 게 아니냐"고 묻자 그는 그게 아니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물론 컴퓨터 그래픽 효과를 대거 삽입하긴 했지만, 이 작품의 바탕은 손으로 '그린' 2D 애니메이션이다. 최근 2D 애니메이션의 흥행이 부진하다. '슈렉'이나 '몬스터주식회사'같은 1백% 컴퓨터로 만든 3D 작품들이 연이어 대성공을 거두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작품은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에 계속 투자를 할 것인지 아닌지의 판단 잣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그는 드림웍스 내에 최고 1백명이 넘게 일하던 기본 밑그림을 그리는 키 애니메이터들이 최근에는 30여명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애니메이션의 종가라는 디즈니도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보다 컴퓨터 잘 다루는 사람을 선호하게 됐다는 얘기다.

곧이어 제작자인 제프리 카젠버그가 나타났다. 그는 "2D 애니메이션이 손으로 정성스럽게 쓴 편지라면 3D는 e-메일이다. 3D가 편하고 빠를 수는 있지만 사람 냄새까지 전달할 수는 없다"고 그림 애니메이션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사실 드림웍스가 지금까지 내놓은 애니메이션 중 3D 작품인 '개미''슈렉'은 크게 선전한 반면 2D 작품인 '이집트왕자'나 '엘도라도'는 그리 빛을 보지 못했다. 게다가 3D 작품들은 실은 드림웍스가 아닌 자회사 PDI의 작품이다.

2D 작품인 '라이온킹'을 대히트시킨 뒤 디즈니를 나와 스티븐 스필버그·데이비드 게펜과 드림웍스를 창립한 그로서는 '라이온킹'의 영광을 2D에 바탕한 이번 '스피릿'으로 재현하고 싶었을 듯하다.

하지만 대중은 어느 새 손으로 그린 그림보다 컴퓨터로 그린 것에 더 익숙해져 가고 있다. 손으로 그리는 사람은 예술가이고 컴퓨터로 그리는 사람은 엔지니어라고 구분하던 게 바로 얼마전의 일이었다. 카젠버그가 '스피릿'에서 강조하고자 한 사람의 역할, 사람의 냄새가 얼마만큼 대중들의 공감을 이끌어낼지 궁금해진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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