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의 그릇된 檢察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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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는 어제 검찰에 대해 "민주당에만 수사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정치적으로 독립된 검찰의 자세가 아니다"고 불평했다. 그는 또 검찰이 야당 공세 회피에 급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뒤 이어 후보의 공보특보는 배경 설명에서 "검찰이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야당의 시녀"라며 검찰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뒤늦게 '야당의 시녀'부분 발언은 취소했지만 후보 측의 검찰을 보는 인식이 국민 정서와 너무도 동떨어진다. 지금 국민은 하루가 다르게 터져 나오는 각종 의혹과 그때마다 등장하는 권력 실세와 정치인, 고위 공직자들의 부패·비리에 넌더리가 난 상태다. 더욱이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까지 잇따라 불거져 오직 수사만 바라보며 종전과 다소 달라진 검찰 모습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시점에 후보 측이 검찰을 전례 없이 강하게 비난한 것은 겉으로는 철저 수사를 외치면서도 속셈은 그렇지 않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또 수사 방향을 한나라당으로 돌리라는 요구는 마치 검찰 수사를 지휘한다는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후보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검찰을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후보는 지난달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민주당 지구당 간부를 만나 사건 얘기를 들어보라"고 한 사실이 밝혀져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관훈토론회에서 그는 이에 대해 "링컨 대통령도 민원인을 만났다"면서 내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민원인을 만나는 것과 청탁전화는 별개 문제다. 유력한 대통령후보가 사건과 관련된 부탁 전화를 했을 경우 그것이 사건 처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몰랐다면 이건 너무 뜻밖이다.

민주당이건 한나라당이건 비리 척결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 검찰 수사가 집중된다면 그만큼 비리·부정 혐의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정치 권력이 검찰권을 이용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사실을 법조인 출신인 후보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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