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김을분 할머니 유명세 싫어 집 떠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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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국적으로 관객 3백만명을 동원한 영화 '집으로…'의 주연 김을분(78·사진)할머니가 충북 영동군 상촌면 산골에 있는 자신의 집을 떠나게 됐다.

영화가 예기치 않은 '대박'을 터뜨리면서 평범한 촌로(村老)에서 일약 '온국민의 스타'가 된 김할머니는 '벼락부자'로 오해하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서울의 아들 집을 무시로 찾아오는 극성 팬들의 등쌀 등에 못이겨 서울의 모처로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김할머니의 친손녀인 이모(23)씨는 지난 11일 '집으로…'의 제작사인 튜브픽쳐스의 인터넷 게시판(www.tube-entertainment.co.kr)에 '튜브픽쳐스 사장님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지난 어버이날 가족회의를 열어 할머니가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할머니가 열일곱살에 시집와 60여년을 사시던 곳을 등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뒤 온식구가 펑펑 울었다"고 밝혔다.

어버이날인 지난 8일은 공교롭게도 '집으로…'가 전국 관객 3백만명을 돌파한 날이었다.

이씨는 이 글에서 "할머니가 영화에 출연한 뒤 영동에 있는 할머니 집을 힐끔거리며 마을사람들에게 '할머니가 얼마나 벌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출연료 외엔 보너스 등 어떤 돈도 받지 않았는데 영화가 흥행한다고 하자 할머니가 돈방석에 올라앉은 것으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이씨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김할머니의 아들 집 근처에도 건장한 남자들이 기웃거리다 들켜 도망간 일이 있어 할머니와 가족들이 무척 불안해했다고 한다.

이씨는 또 "관객 2백만명을 넘어서면서 제작사가 영동군청과 함께 세트장을 관광상품으로 만든다는 얘기가 들려왔을 때 아버지가 할머니의 이사를 결심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할머니는 현재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채 장남(55)부부와 함께 서울 근교에 살 집을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제 39회 대종상 영화제 신인 여우상 후보에 지명됐던 김할머니는 이로써 26일 열릴 시상식에 참석할지도 불투명해졌다.

한편 튜브픽쳐스측은 "관광지 문제는 영화때문에 마을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지자 주민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군청에서 주도적으로 결정한 문제였다"며 "김할머니의 사생활이 보호받아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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