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댈 곳 없는 중국 청년의 외로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6면

소무 (EBS 밤 10시)

최근 등장하는 중국 젊은 감독들의 영화를 보노라면 1940년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재림을 보는 듯하다.'북경자전거'나 '안양의 고아' 등에서 보듯 고통스러운 현실을 감정의 과잉없이 냉정하게 응시하는 듯한 작품이 많다. 자본주의 경제방식을 받아들이면서 빈부간, 도농간 격차가 커지고 이에 따라 소외와 갈등의 그림자가 중국 대륙에 짙게 드리우고 있는 현실과 관련이 깊을 듯싶다.

1997년작 '소무'는 중국 영화의 최근 경향을 선도한 작품이라 하겠다. 시골에 사는 소무는 소매치기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룸펜 같은 인물. 그런데 자기처럼 한때 소매치기였던 친구 샤오양이 담배 밀매를 통해 성공한 청년 실업가로 부상한 걸 보고 어리둥절해 한다.

유명인사가 된 샤오양의 결혼식 소식은 연일 TV 뉴스를 장식한다. 반면 소무는 경찰의 일제 단속 때문에 궁지에 몰려 초라하게 뒷골목이나 배회해야 하는 신세. 그는 죽마고우 샤오양의 결혼식에 가서 소매치기로 마련한 축의금을 내민다. 그러나 출처가 불분명한 돈은 받을 수 없다며 거절을 당해 자존심이 크게 상한 소무는 피로연에서 엉망으로 취해 난동을 부린다.

'소무'가 데뷔작인 감독 지아장커는 우리돈으로 6백만원에 영화를 완성했다. 등장하는 배우는 모두 감독의 고향 사람들이고 필름도 값이 싼 16㎜를 사용했다. 중국 정부는 영화가 '불온하다'며 상영금지 처분을 내렸지만 해외영화제에선 걸출한 재능의 탄생을 반겼다. 마침내 지아장커는 신작 '언노운 플레저'로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70년생이니 이제 겨우 서른 둘이다.

영화에서 소무는 울적한 마음에 단골 가라오케에서 메이메이라는 여급을 만나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그도 잠시, 그녀는 부유한 남자를 따라 떠나버리고 만다. 가슴쓰린, 너무나 가슴쓰린 영화다. 사는 게 꼭 이래야 하나…. ★★★★

이영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