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가로막는 한국인 6가지 기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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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1992년 우리나라 농민 대표들은 스위스 제네바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본부 앞에서 삭발 시위를 벌였다. 당시 GATT에서 우루과이 라운드(UR)라는 협상을 진행하면서 쌀 시장 개방을 주요 의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의 시위를 보고 당시 우리 정부와 언론은 "나라망신 추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 과연 농민데모가 협상력을 떨어뜨렸을까?

10년이 지난 지금,『한국인은 왜 항상 협상에서 지는가』라는 책의 저자인 김기홍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의문을 풀어줬다. 그는 "정부와 언론의 비판은 협상 기초도 모르는 무식의 소치"라고 지적했다. "데모는 정부 협상력을 강화해준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내부협상과 외부협상으로 설명한다.

즉 협상은 테이블에 앉아 상대편과 토론하는 것(외부협상)만이 전부는 아니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내부에서 힘을 모아가는 과정(내부협상)이다. 게다가 적당한 부정적 여론은 오히려 협상대표들의 입지를 강화시킨다. 저자는 그동안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정부의 외부협상력은 상당히 좋아졌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도 협상 정보를 알려 동의를 구하거나, 협상에 비판적인 여론을 등에 업어 활용하는 등의 내부협상력은 등한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우리 정부가 외국과 협상할 때마다 질 수밖에 없는 근본이유가 이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농민데모뿐아니라 대우자동차 매각, 한·러 어업협상, 한·중 마늘협상, 한·프랑스 외규장각 도서반환협상 등 풍부한 사례를 통해 이를 입증하고 있다. 김동성의 금메달을 끝내 되찾지 못한 이유도 분석된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가 장유유서·권위주의·흑백논리 등 '한국인의 6가지 기질'도 협상에서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는 재미는 한가지 더 있다. 경제학은 원래 접근하기 쉽지 않은 학문이지만 이 책의 부제인 '게임이론'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저자는 경제학 지식이 없는 일반독자들도 게임과 협상의 본질을 쉽게 알 수 있도록 단순화했다.

김영욱 산업부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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