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엄마 그린 『돼지책』 돼지그림 찾는 재미에 교훈적 내용도 술술 읽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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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이번 어버이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엊그제 꼬마 고객들인 윤철이와 유진이의 어버이날 편지를 받고 놀랐는데, 이번엔 새봄이의 카네이션 바구니, 다은이의 장미꽃다발, 아리와 근아와 주희의 편지와 선물꾸러미가 배달된 것이다. 색종이를 예쁘게 오려 만든 편지지엔 갖가지 바람이 담겨 있었다. "좋은 책을 많이 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재미있는 책 많이 갖다 놔요"…. 모두들 아이가 없는 동화나라 아저씨를 기억한 것이다. 장사하는 사람 중에서 이렇게 많은 아이들에게 어버이 대접을 받은 사람이 또 있을까?

아이들의 편지를 보고 5월을 생각하니 두 권의 책이 떠올랐다. 앤터니 브라운이 그리고 쓴 『고릴라』(비룡소)와 『돼지책』(웅진닷컴)이다.

『돼지책』은 여느 가정에서 있을 법한 일들을 그리고 있다.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아들들과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는 피곳은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 힘들어 하던 피곳 부인은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쪽지를 남기고 집을 떠나버린다. 아이들과 피곳은 정말 돼지처럼 변해갔고, 집은 돼지우리로 변해갔다. 피곳 부인이 떠난 자리가 그렇게 컸던 것이다.

그 한 권의 책을 본 뒤 나타낸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한 아이는 『돼지책』처럼 되지 않기 위해 집안일을 거들겠다고 나선다. 또 다른 아이는 '엄마는 어떻게 살고 싶었던 걸까?'생각해 본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우리 엄마의 행복은 내가 공부 잘하는 것"이라며 시큰둥해한다. 집안일을 거들려고 해도 공부나 하라고 말린다는 것이다. 엄마의 행복이라는 골치 아픈 주제는 던져버리고 책에 나온 돼지들 찾기에 바쁘다.

아이들은 직장에 다니든 안 다니든, 엄마가 집안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뿐만 아니라 집안일을 아주 쉬운 걸로 생각한다.

『고릴라』에서 한나는 아빠와 함께 지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빠는 늘 바쁘게 일만 한다. 토요일에나 이야기할 수 있으려나 하지만 주말이 되면 아빠는 너무 지쳐 아무 것도 함께 할 수 없다. 아빠와 함께 살지만 덩그마니 혼자 남겨진 듯한 한나. 한나는 생일날 받은 고릴라 인형과 함께 환타지 세계로 들어가 아빠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한다. 동물원에도 가고, 영화도 보고, 식당에도 가고, 춤도 추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한나의 심정이 그대로 아이들에게 전이된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고릴라 찾기다. 고릴라 얼굴을 한 다빈치의 모나리자, 휘슬러의 미술가 어머니의 초상, 슈퍼맨, 찰리 채플린, 심지어 자유의 여신상의 얼굴도 고릴라이다. 작가는 왜 작품 속에 이런 장치를 해 놓은걸까? 바로 그 물음을 좇다가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그림책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어린이책 전문서점 '동화나라'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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