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 청문회 마다않는 스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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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9일 낮 미국 하원 레이번 의원회관 2358호실. 하원 세출위원회 노동·보건·복지소위가 '렛 신드롬' 연구·치료를 지원하기 위한 청문회를 열었다. 이 병은 주로 여자아이에게 발생하는 심각한 신경장애다. 평소엔 청문회가 그저 조용히 열리곤 하던 작은 방에 이날은 사진기자가 20여명이나 몰렸고 청중도 북적댔다.

'특별 손님' 줄리아 로버츠가 들어섰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껴안았고, 몇몇 의원과도 포옹하고 악수했다.

편당 출연료 2천만달러, 2001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출연작 '에린 브로코비치'), 피플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일곱번이나 등장…. 사진기자들이 당대 최고의 여배우에게 정신없이 플래시를 터뜨리자 스티니 호이어(민주·메릴랜드주)의원이 한마디 했다.

"사진기자들이 렛 신드롬에 이렇게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폭소가 터졌다. 로버츠의 증언이 시작됐다.

"보통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까지는, 이 병의 불행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요. 그러나 아이들은 점점 말하고 걷고 손을 쓰는 능력을 상실합니다. 부모가 도와주지 않으면 먹지도 입지도 씻지도 못해요. 그렇게 살다가 50도 못돼 죽곤 하지요."

로버츠가 말을 이어갈 때 휠체어에 앉아 있던 한 어린이는 10여초 간격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로버츠는 뒤를 돌아보고 아이에게 미소를 짓기도 했다. 대사연습을 하듯 진지하게 진술서를 읽던 로버츠는 중간쯤에서 목이 메였다. 그리곤 눈물을 닦아냈다.

"내 친구 애비게일은 바로 이 병으로 고생하다 최근 저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애비게일은 겨우 열살이었어요. 의원님들, 그 애는 열살이었어요."

줄리아 로버츠 자신은 이 병과 인연이 있을 만한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1996년 애비게일이란 소녀를 알게 되면서 렛 신드롬 환자를 돕는 일에 정성을 들여왔다.

그녀를 청문회에 초청한 사람은 호이어 의원이었다. 의원들과 환자 지원단체들은 로버츠 같은 당대의 스타가 의회 청문회에 등장하는 것이 홍보와 정책추진에 얼마나 효과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수 스타들도 공익을 위해 의회 청문회 증언대에 앉는 일을 꺼리지 않는다.

어떤 스타는 다른 이를 돕기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치부를 서슴지 않고 밝히기도 한다. 뉴욕 자이언츠 소속인 프로미식축구 스타 제이슨 쉬언은 '10대 임신 예방의 날'인 지난 7일 하원 청문회에 섰다.

그는 어머니가 10대 때 자신을 낳아 남편도 없이 기르느라 겪은 시련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그는 "만약 조심하지 않으면 20분의 쾌락 때문에 18년을 고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11일에는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팝스타 엘튼 존 경(卿)이 상원 보건·노동·교육위원회 청문회에 나타났다.

그는 에이즈 예방·치료를 위해 부자나라 미국이 보다 많이 기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엘튼 존이 설립한 재단은 지난 10년간 55개국에서 '대(對)에이즈 전쟁'지원에 3천5백만달러(약 4백50억원)를 썼다. "연예인과 정치인은 박수와 인기를 먹으며 영화롭게 삽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일반인과 다른 무슨 일을 하느냐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엘튼 존의 말이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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