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업씨 18억 청탁 대가 여부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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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성환 서울음악방송 회장이 "김홍업 아태재단 부이사장으로부터 18억원을 빌렸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 돈의 출처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특히 김성환씨가 전달받은 자금 중에는 여러 기업과 개인에게서 넘겨받은 수표가 적지 않게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의구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검찰은 이 돈의 상당 부분이 金부이사장이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챙긴 것으로 보고 혐의 입증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그에 대한 사법처리 가능성이 한층 커지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난 돈인가=김성환씨는 "지난해 초 현금과 수표가 섞인 10억원을 빌리는 등 올해 초까지 세 차례에 걸쳐 모두 18억원을 金부이사장에게서 꿨다"고 말하고 있다. 검찰은 이 진술이 사실이면 중간에 갚은 돈을 그대로 다시 빌려준 경우가 있다해도 실제 金부이사장의 금고에서 나간 돈이 최소한 15억원은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金부이사장이 이 돈을 어떻게 마련했느냐다.

金부이사장은 1990년대 중반 건설업계에서 일했으나 소득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정부 들어서는 이렇다할 직업도 없었다.

金부이사장측은 "부인이 외국계 회사에서 억대의 연봉을 받고 있어 저축액이 상당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15억여원이라는 자금 규모를 설명하기에는 궁색한 해명으로 보인다.

아버지인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을 도우며 관리하던 선거자금 가운데 남은 돈이 포함됐다고 설명하는 측근도 있다. 그렇다해도 문제다. 이 주장이 사실일 경우 金씨에게는 횡령 또는 증여세 포탈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또 당시 대선자금 규모와 출처에 대한 논란을 피하기도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金부이사장이 김성환씨에게 건넨 돈에 여러 은행에서 각기 다른 시점에 발행된 다양한 액수의 수표가 있고 이 수표 가운데 일부가 기업체의 계좌에서 나온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인사 청탁·이권 개입 대가로 받은 돈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성환씨 진술 믿을 수 있나=김성환씨는 김홍업씨와 돈 거래를 대차(貸借)관계로 설명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김홍업씨의 돈을 '세탁'해 준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체 등으로부터 받은 수표와 현금을 여러 차명 계좌에 넣어 자금추적이 어렵게 한 뒤 '깨끗한' 수표로 인출해 金부이사장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성환씨가 관리해온 50여개의 차명계좌 중 상당수가 실제로는 金부이사장 것이며 이 계좌들을 통해 돈세탁하는 역할을 김성환씨가 맡았다는 추측이다.

김성환씨의 진술에 지난해 10월 5억원을 빌리고 갚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金부이사장이 돈을 건넸다가 다시 받는 기간이 짧다는 것도 의심가는 부분이다.

검찰 역시 김성환씨가 관리해온 차명계좌에서 출금된 수표 10억여원이 아태재단에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자 이 계좌에 들어 있는 수십억원의 자금이 金부이사장 소유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를 하고 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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