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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녹음기가 발명되면서부터 사람들은 왜 똑같은 목소리인 데도 목소리의 주인이 느끼는 소리와 남들이 느끼는 소리(녹음된 음성)가 다른지 이상하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비교적 쉽사리 이같은 의문을 풀어냈다.

말소리는 후두에서 진동하며 퍼져나온다. 진동 중 일부는 입을 통해 밖으로 나와 공기를 타고 귀에 전달되는데, 이 소리가 남들이 듣는 내 목소리다. 녹음된 목소리도 이것이다. 그러나 진동 중 다른 일부는 우리 머리 속의 갖가지 액체나 고체를 뚫고 지나가게 마련이다. 우선 후두는 액체로 꽉찬 부드러운 조직이다. 귀의 안쪽에 있는 속귀와 중귀는 단단한 뼈로 둘러싸여 있는데, 속귀는 액체 상태로 돼 있고 중귀에는 공기가 들어 있다. 공기를 통과하는 소리와 액체·고체를 통과하는 소리는 서로 다르다. 따라서 녹음된 소리는 내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도 아직 풀지 못한 현상이 있다. 분필이 칠판 위를 '찌익'긋고 지나갈 때 소름이 쭉 끼치는 현상이다. 웬만한 나이의 어른들은 학창시절에 자주 경험했을 것이다. 영어로 '거위살(goose flesh)'로 불리는 소름 자체는 추위나 공포를 느낄 때 털 아래 작은 근육이 수축하는 현상이므로 신기할 게 없다. 문제는 칠판 긋는 소리가 왜 소름을 돋게 하느냐지만, 아직 뾰족한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소리의 주파수가 높기 때문에 공포나 불쾌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짐작은 1986년 미 노스웨스턴대에서 실험한 결과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소리에서 주파수가 높은 부분을 제거해도 피실험자들은 여전히 오싹함을 느꼈던 것이다. 다만 연구팀은 칠판 긋는 소리가 일본원숭이가 두려워 울부짖는 소리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아득한 원시시대의 고단한 생존투쟁의 흔적이 우리 몸에 남아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최규선씨가 구속되면서 남긴 녹음테이프를 놓고 "철저히 규명하라""황당한 소리"라는 아우성이 엇갈리고 있다. 검찰은 그 와중에 다른 '소리'를 보탰다가 야당으로부터 "정치검찰의 물타기 공작"이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이쯤 되면 가위 소음 수준이다. 학창시절에 듣던 추억의 칠판 긋는 소음이라면 차라리 정겹기나 하겠다.

노재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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