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사건 재현 MBC '타임머신' "엽기의 원조"인기 만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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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국회 도서관을 뒤져라=작가·PD 등 제작진은 일주일의 반 이상을 국회 도서관에서 보낸다. 재미있는 아이템을 찾기 위해 신문·잡지·공공기관 발행지 등 모든 인쇄 매체를 샅샅이 뒤진다.

이들이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신문 사회면의 톱 뉴스나 1단 기사.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20~30년대엔 소름이 오싹 끼치는 엽기적인 사건들이 많았고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한 70년대엔 돈과 관련한 사건들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이다.

일단 소재가 채택되면 제작진은 당시 기사를 쓴 기자에게 자세한 내막을 취재하거나 사건이 발생한 마을을 찾아가 원로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을 역추적하다 보니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다.

60년대 이전의 사건들은 관련자들이 사망하거나 소재 파악이 어렵고 사안이 민감한 경우엔 아예 인터뷰 자체를 꺼린다. 총 다섯개의 아이템 중 한두개를 차지하는 해외 토픽을 위해선 특파원이나 각국의 방송사를 통해 취재하고 이마저 어려울 땐 제작진이 직접 현지로 떠나는 일도 허다하다.

◇어설픈 연기가 더 효과적이다?='타임머신'은 일반인의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특성상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엑스트라 배우를 기용한다. 특히 매주 한명씩 등장하는 '시청자 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극의 재미를 더한다.

1회 '영자의 전성시대'에 출연했던 김량경(25)씨는 탤런트 뺨치는 연기로 아예 이 프로그램 전속 엑스트라로 낙점됐다. 현재 1천여명이 대기할 정도로 인기를 끄는 시청자 배우는 20~30대 학생·직장인뿐 아니라 40대 주부·네살배기 어린이 등 신청자의 면면도 다양하다.

특히 외국인 연기자는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아 촬영에 애를 먹지만 사실적인 장면을 위해선 꼭 필요한 존재다. 카메라를 대하는 표정이 약간 어색하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은 한국인 못지 않다는 게 제작진의 귀띔이다.

임남희 PD는 "화나는 표정에선 머리에서 김이 나는 그림을 삽입하는 등 특수효과를 통해 어색한 부분을 보완한다"며 "시청자는 오히려 엉성한 연기를 통해 세트에서 직접 보는 듯한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재연 프로그램의 위험한 줄타기=98년 각 방송사는 재연 프로그램을 자제한다는 자정 선언을 했다.'경찰청 사람들''토요 미스터리 극장''다큐멘터리-이야기 속으로' 등 실제 상황을 드라마식으로 재구성하는 재연 프로그램이 점점 자극적이고 황당한 내용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재연 프로그램이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타임머신' 외에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우리시대', KBS '쇼 파워비디오'의 황당극장,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등이다.

이들 재연 프로그램은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포장하려다 보니 자칫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로 흐를 위험이 높다. 실제로 '타임머신'에서 성불구인 남편 때문에 욕구 불만인 아내가 허벅지를 찔러 피가 나는 장면, 가짜 유방을 달고 나온 외국인 출연자가 상체를 훤히 드러낸 장면 등은 이미 선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타임머신' 이종현 책임PD는 "과거의 쇼킹한 뉴스를 찾다보니 소재가 약간 자극적이었던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는 온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참신한 소재를 적극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예비군 훈련에 가기 싫어 자신을 여자라고 주장한 남자(1974년), 돼지 꼬리가 달린 여자 아이(72년), 자신의 아이를 '악마'라고 이름 지은 일본의 한 부부(94년)…. 시간을 거꾸로 돌려 과거의 황당하고 엽기적인 사건들을 재현하는 MBC '타임머신'이 일요일 밤을 달구고 있다. 지난해 11월 첫 방송 이후 현재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장년층엔 과거의 향수를, 신세대엔 호기심을 이끌어내고 있다. 엑스트라의 어설픈 연기와 허술한 무대 세트에도 불구하고 '타임머신'이 인기를 끄는 비결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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