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눈매 살아있어 큰 일 낼 줄 알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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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희망은 살아숨쉬는 꿈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젊은이들에게 항상 희망과 꿈을 가질 것을 권했다.

지난 6일 끝난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 컴팩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경주(32)도 꿈을 이루기 위해 쉽게 돈을 모을 수 있는 한국과 일본투어를 등지고 고난의 길을 택한 끝에 미국 진출 2년4개월여 만에 챔피언의 뜻을 이뤘다.

오늘의 최경주가 있기까지 많은 사람이 그의 곁에 있었지만 가장 큰 영향을 준 도우미는 바로 스폰서인 슈페리어의 김귀열(60·사진)회장이다.

김회장은 최경주가 1993년 프로에 입문했던 무명시절부터 의류를 지원했고, 96년부터는 줄곧 연간 계약금을 지급하며 '최경주=슈페리어'의 공식을 성립시켰다.

특히 지난 1월에는 최경주와 3년간 약 15억원이라는 파격적인 지원계약을 체결, 최선수가 마음놓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최선수가 다른 업체의 손길을 마다하고 굳이 슈페리어와 전속계약을 계속 고집한 것도 김회장과의 의리를 지키는 우직함에 있었다.

#"쟤는 전망이 있어."

79년 회사를 창립, 국내 기업 중 가장 먼저 골프전문 의류메이커로 나선 슈페리어가 정식으로 계약선수를 뽑은 것은 96년이었다. 당시 김회장은 최경주를 비롯한 5명의 유망 프로들과 연간 2천만원에 스폰서계약을 했다.

최경주는 계약을 마친 뒤 "이제는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훌륭한 선수가 되겠습니다"고 다짐했다. 결국 최경주는 이후 국내무대에서 승승장구, 김회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김회장은 이듬해인 97년 최경주의 계약금을 4천2백50만원으로 대폭 올렸고, 98년부터는 계약금 7천만원에 우승보너스 3천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지원을 했다. 96년 당시 최경주를 발탁한 이유에 대해 김회장은 "골프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게 파워다. 다른 기술은 연마하면 된다"면서 "최경주는 체격도 당당하고 파워가 있었다. 특히 눈매에 기가 살아있었다"고 회상한다.

#"소망있는 삶을 살아라."

독실한 기독교신자(영락교회 안수집사)인 김회장의 가훈은 '소망있는 삶'이다. 인간은 뭔가 기대할 것이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회장은 항상 최경주에게 꿈을 불어넣었다. 최경주가 미국행을 서두를 때 김회장은 "몇년 더 기량을 쌓아 PGA에 도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세계 최고의 실력파들이 모이는 PGA투어에서 버티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으나 최선수는 오히려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최경주는 6일 김회장에게 전화를 했다. "회장님 덕분에 우승했다"는 인사를 했고, 김회장은 "최프로 때문에 나도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면서 "항상 겸손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최경주와 슈페리어가 항상 순항했던 것만은 아니다. 최경주는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국제적인 매니지먼트회사인 IMG와 계약했다. 그때 최경주는 슈페리어와 사전 상의가 없었고 후에 지원문제를 논의할 때 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최경주는 "회장님, 주고싶은 만큼 주세요"라며 자신을 낮췄고 슈페리어와 계속 한솥밥을 먹을 수 있었다.

#"선수를 위해 붙잡지 않겠다."

옵션계약에 따라 슈페리어는 상금의 25%인 2억5천만원을 지급해야 한다. 김회장은 "거액이 나가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불안감이 있다. 계약이 끝나는 2004년 후에는 세계적인 스타가 된 최경주와의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다.

김회장은 "과거 복싱선수도 지원해 봤다. 모든 것이 초창기와 같을 수는 없다. 선수의 앞날을 생각하면 기회를 주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회장은 "스타는 때가 되면 큰돈을 벌어야 한다"면서 "최경주가 더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아쉽더라도 헤어질 것"이라고 했다.

오는 15일은 슈페리어의 창립기념일이다. 김회장은 "고객들과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해 2만장의 티셔츠를 제작하고 있다"면서 "국민에게 이런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보람있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약속했다.

글=성백유,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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