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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개편의 바른 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여야의 대선구도가 가시화하면서 이른바 정계개편론이라는 것이 정치가의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武鉉)후보의 정계개편 구상이라는 것이 기껏 상도동을 찾아 YS의 비위나 맞추고 경남·부산권의 지방선거에서 YS의 영향력과 지분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이것은 3金 정치와 지역주의의 부활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야당과 여론의 공박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민주세력 결집으론 한계

실제로 많은 국민은 후보의 정계개편론이 그저 마음에 맞는 몇몇 야당의원이나 빼오고 YS를 등에 업고 대선에서 영남표나 확보해 보자는 치졸한 대선전략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는 바로 자신의 정계개편론이 DJ와 YS로 대표되는 민주세력의 새로운 결집을 통해 고질적인 지역주의 망국론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이런 후보의 정계개편 구상의 진위를 가리는 것이 용이한 일은 아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지역주의 또는 지역적인 감정은 박정희(朴正熙)정권의 왜곡된 지역개발정책에서 연유해 3金씨의 지역분할구도에 의해 고착돼 왔다. 결국 이러한 우리의 후진적인 정치문화가 유권자를 볼모로 해 우리나라 정치발전의 발목을 잡는 망국적인 병리현상이 돼버린 것이다. 특히 지역주의는 우리 정치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고질적인 바이러스로 정치의 모든 국면에 깊숙이 잠복해 있다가 선거 때만 되면 활성화돼 우리에게 치유할 수 없는 선거후유증을 남기곤 했다. 국민 모두는 이러한 지역주의와 지역감정의 망령을 털어내고 이념과 정책의 대결을 통한 건전하고 수준높은 정치가 태동되길 갈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후보의 정계개편론은 바로 지역주의의 구태를 극복하고 이념과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문화의 실현에 합당한 한도 내에서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따라서 후보의 정계개편 구상은 과거의 민주세력의 결집이라는 이른바 신민주연합의 틀만으로는 국민에게 수용되고 지지를 받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 우리사회는 이른바 민주와 반민주 또는 자유와 독재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갖고 모든 구성원의 다양한 정치적 욕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너무도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후보의 정계개편론은 이러한 다양한 우리사회의 흐름과 정치적 욕구를 진정한 보수와 진보라는 큰 그릇으로 담아내는 노력의 시작이어야 한다. 우연히도 여당의 대통령후보는 비교적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고, 야당의 대선후보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정책과 이념을 표방하고 있으므로 이번 대선을 기점으로 정당간에 건전한 보혁대결의 장이 열릴 수 있는 호기가 형성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후보는 우리사회가 당면한 여러 가지 현안과 그 해법에 대해 뚜렷한 철학과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책임이 있으며, 그의 정계개편론은 바로 이러한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돼야 한다.

여기에는 남북문제·대미(對美)관계는 물론이고 교육정책을 포함해 보건 및 의료정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생문제를 그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후보로선 민주당은 물론이고 기성 정치권 이외에도 자신의 이념과 철학을 지지하는 단체나 인사들을 어떻게 정계개편의 구상에 끌어들일 것인지 국민 앞에 펼쳐 보여야 한다.

개혁 방향·철학 분명해야

후보의 정계개편 구상은 바로 후보가 내세우게 될 정책과 이념을 지지하고 실현하려는 정치집단과 그렇지 않은 정치집단을 새롭게 구분하는 작업이 돼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정한 보혁구도의 정착을 위한 정계개편 노력은 후보에게 부담스러운 일일 수도 있고 또한 현실정치인의 한 사람인 그의 대선 득표전략과는 배치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여 어물쩍 '민주세력의 재결집'이니 '동서화합'이니 하는 지극히 총론적인 수준의 구호만 갖고는 정계개편의 진정한 목적이 달성될 수 없다. 따라서 후보의 정계개편 구상은 내용과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이것이 결여된 정계개편의 논의는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으며, 노풍(風) 속에 정치개혁을 희망했던 수많은 국민과 유권자를 우롱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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