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총경 도주 국정원 관련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미래도시환경 대표 최규선(崔圭善·42)씨의 육성 테이프가 7일 중앙일보와 뉴스위크 한국판을 통해 공개되면서 일부 사실이 확인되고 여러가지 의혹이 새로 불거졌다.

崔씨는 구속되기 직전인 지난달 19일 영장실질심사 도중 억울함을 호소하며 거칠게 내뱉었던 청와대측의 해외 도피·밀항 권유 부분을 '청와대 밀항 대책회의' 형태로 구체화했고, 김홍걸씨에게 직접 수표로 3억원을 건넨 사실도 처음으로 밝혔다. 예금 계좌추적 등을 통해 김홍걸씨에게 건너간 崔씨 돈의 대가성 확인에 주력하던 검찰은 거액이 수표로 건네졌다는 주장이 나오자 곧바로 제기된 각종 의혹의 진상파악에 나섰다.

물론 崔씨의 일방적인 주장이긴 하지만 테이프에 거론된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한 확인작업이 불가피해 최규선 육성 테이프 파문이 일 전망이다.

◇청와대 밀항 대책회의=崔씨는 검찰 출두 이틀 전인 지난달 14일 녹음한 테이프에서 "그제(지난달 12일)부터 이만영 비서관과 최성규 특수수사과장, 두명의 국정원 직원이 나를 해외로 밀항시키기 위한 대책을 여러차례 했다"고 주장했다. 최성규씨에게서 들은 것이라지만 구체적 정황이 담겨 있다.

崔씨의 주장대로라면 청와대 대책회의의 결론은 '출국금지가 된 崔씨를 부산을 통해 밀항시키자'는 것이었다.하지만 죽음의 공포를 느낀 崔씨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자 최성규씨는 13일과 14일 집요하게 함께 달아나자며 '동반 밀항'을 요청하다가 혼자 해외로 달아났다는 것이다.

특히 비서관과 최성규씨 외에 국정원 직원들이 밀항 대책회의에 참석했다는 주장은 눈길을 끈다. 최성규씨의 신출귀몰한 도피 과정에 배후가 있다는 의혹과 관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동남아시아를 거쳐 미국으로 달아나는 과정은 너무나 주도면밀해 특별한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현재 청와대에 파견된 국정원 직원은 민정수석실의 국장급과 과장급 각 한명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대책회의에 참석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청와대 대책회의와는 별도로 시내 모 호텔에서 12일 열린 관련자 대책회의 참석자가 崔씨와 최성규씨·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송재빈 타이거풀스 인터내셔녈 대표·崔씨의 이종사촌형 모씨 등 6명이었다는 사실도 이번에 드러났다.

◇수표 3억원의 정체는?=崔씨가 김홍걸씨에게 줬다고 주장한 1백만원짜리 수표 3백장(3억원)의 출처와 성격도 의혹이다. 崔씨는 그동안 국민의 정부 출범을 전후해 홍걸씨에게 차량 및 주택자금 등 용돈으로 9만달러를 제공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육성 테이프에서 그는 3억원을 수표로 준 사실을 스스로 시인했다. 검찰 소환이 임박하자 崔씨가 김현섭 민정비서관에게 "계좌추적을 피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니 소환 시기를 늦춰달라"고 요청하면서 털어놓았던 것.그는 이 돈에 대해서도 "대가성이 전혀 없고 일종의 보험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검찰의 계좌추적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미지수다.

검찰은 문제의 3억원이 崔씨가 타이거풀스 주식 20만주를 포스코 계열사 등에 70억원에 팔아주고 송재빈씨에게서 받은 24억원 중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崔씨와 宋씨는 "주식 매각 사례금이었다"고 주장하지만 24억원이 체육복표 사업자 선정 로비의 대가일 가능성이 크고 그중 일부가 홍걸씨에게 갔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崔씨가 수표 추적을 피해야 한다고 한 것으로 봐 최근에 주고받은 부정한 돈일 가능성도 있다.

◇고위층 비호 의혹=1998년 9월 마이클 잭슨 공연 사기건으로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수사를 받았던 崔씨는 "나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됐으나 박주선 청와대 법무비서관의 도움으로 검찰에서 무혐의로 풀려났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영장이 신청된 것이 아니라 발부됐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구속영장이 발부됐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당시 구속영장을 심사했던 담당판사는 "영장이 들어왔는지 등 그런 사실 자체가 기억이 안난다"고 말했고 당시의 영장 기록도 보존연한 3년이 지나 폐기된 상태다.

崔씨는 "당시 아무 죄도 없는 나를 이강래 청와대 정무수석과 이종찬 국정원장이 김세옥 경찰청장을 시켜 골인(구속)시키도록 지시했다"고도 했다. 그 이유는 알 왈리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대우와 현대에 각각 1억5천만달러·5천만달러를 투자하도록 한 대가를 나눠갖자는 여당 국회의원의 요구를 거절하면서부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주선·이강래·이종찬·김세옥씨 등은 모두 崔씨 주장에 대해 "그럴 입장에 있지도 않았고 그럴 이유가 없었다"며 "허황된 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조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