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사람수만큼 존재한다' 무대의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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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지금 서울(서울공연예술제)과 의정부(의정부음악극축제)에서는 국제적인 연극축제가 한창이다. 해외 초청작 목록 가운데는 볼만한 작품이 여럿 눈에 띈다. 국적은 물론 내용과 형식도 판이하다. 사람 사는 모습을 반영한 게 연극인 이상 얼마든지 다양한 연극이 가능하다. 그래서 "연극은 사람 숫자만큼 존재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기회에 남의 것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로부터 뭔가 배울 게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은 무슨 고민을 하고 살며 연극은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궁금증에 대한 해답 말이다. 이번 초청작 가운데 그런 모습을 살필 수 있는 네 작품을 골랐다.

◇캐나다'라잇모티브'(Leitmotiv)=실험적인 형식이 돋보이는 캐나다 극단 레 듀 몽드의 작품이다. 연극·오페라·영상이 결합한 '멀티미디어극'이다.

연극에 영상을 끌어들이는 작업은 우리 무대에서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늘 완결성이 부족했는데, 이 작품은 좋은 모델이 될 만하다. 전쟁으로 산산이 부서지는 두 남녀의 비련을 큰 스케일로 담아낸 주제의식과 세련된 형식미의 조화가 뛰어나다.

주연인 메조 소프라노 노엘라 휴잇이 부르는 다채로운 음색의 '소리예술(voice arts)'은 감정을 자극하는 기폭제다. 그녀는 대사가 아닌 의성어·의태어를 통해 신비감을 고조시킨다. '두개의 세상'을 의미하는 레 듀 몽드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극단이다. 1997년 열린 세계연극제 때 '약속의 땅'을 선보인 바 있다. 10~12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 02-762-0010.

가족애 다룬 日 리얼리즘

◇일본 '행복의 조건'=우리네 가정의 모습을 닮은 훈훈한 가족극으로 일본 리얼리즘 연극의 진수다. 작품을 만든 극단 도게자(道化座)는 오사카·고베 중심의 일본 관서(關西)지방 연극을 대표한다.

도게자는 지난해와 지지난해 이미 두차례의 한국 공연을 통해 탄탄한 연극세계를 보여주었다. '행복' 연작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이다. 부권의 상실과 가족해체의 문제를 정공법으로 다뤘다. 연극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은 노망 든 할아버지역의 스나가 가쓰히코. 도게자의 대표이자 연출가인데,연기 또한 발군이다.

지금까지 한·일 연극교류는 도쿄 중심의 관동지방 연극에 쏠려 있었다. 그런 치우침을 만회하고자 양국은 2000년부터 '관서아시아연극제'를 통해 교류의 물꼬를 터왔다. 도게자는 줄곧 일본측 대표였다. 한국에서는 극단 목화와 미학에 이어 서울시극단이 오는 6월 이 연극제에 참가해 양녕대군 이야기 '양녕'을 공연할 예정이다. 15~17일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02-3991-648.

中 20세기 초 궁핍한 농촌

◇중국 '진쯔'(子)=우리에게 중국 연극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한·중·일 연합 축제인 '베세토 연극제'를 통한 간헐적인 교류가 전부였다. 이 작품을 공연할 충칭시천극원(重慶市川劇院)은 51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 10대 지방 희곡연극단 가운데 하나다.

전통연극을 발굴·정리하는 한편 고래(古來)의 연극본(本)을 재편집·창작해 선보이는 '실험극단'이다. 흔히 중국에서는 '정통 리얼리즘'외의 모든 시도를 실험극으로 간주하는데 전통의 현대화 작업도 예외는 아니다. '천극'은 쓰촨(四川)지방의 전통극이며 방언으로 연기하는 게 특징이다. '진쯔'는 유명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다. 군벌이 득세하던 20세기 초 중국의 궁핍한 농촌사회를 그렸다. 6월 4~6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 02-760-4640.

佛 혁명기 배경 변혁 꿈꿔

◇러시아 '마라와 사드'=러시아 진보적인 연극의 산실인 타강카극장의 작품이다. 원작자는 독일 출신의 극작가·화가·영화감독인 페터 파이스다. 1964년 탈고한 작품인데,그해 피터 브룩 연출로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돼 파란을 일으켰다.

연극의 주제는 주인공 마라와 사드가 등장하는 극중극에 집약돼 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기를 배경으로 사회변혁을 꿈꾸는 마라와 이를 냉소하는 사드의 논쟁이 볼 만하다. 음악적인 몸짓으로 구성된 독특한 형식미도 볼거리다. 노장 유리 류비모프 연출. 10~11일 의정부 예술의전당 대극장. 031-828-5841.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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