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 있는 선비의 독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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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재주는 부지런함만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못하다." 우리 선조들이 후학들에게 강조하던 말이다. 신간 『책읽는 소리』에서도 저자 정민(한양대 국문과)교수는 이 말을 조선시대 후기의 문장가 홍길주 선생의 글을 인용하면서 거듭 강조한다.

'조선후기 고문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교수는 이 책에서 '옛 글 속에 떠오르는 옛 사람의 내면 풍경'을 살펴본다.

서양문화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이 책은 우리 고전에서 밝혀낸 독서 가이드 역할을 한다.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왜 읽는가 등에 대한 선조들의 생각을 체험할 수 있다.

주자학 영향을 받은 조선 선비들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책읽기였다. 그들은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소리내어 읽고 또 읽는다. 같은 책을 수백번 읽는 것은 예사고 중요한 책은 1만번이 넘게 읽는다. 책 내용이 자연스럽게 암기가 되며 일상에 적용된다.

조선의 선비들은 왜 이렇게 읽고 또 읽었을까.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다. 독서를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기 위함이다. 내면의 성숙함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이른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원리는 공자 이래 유학(儒學)의 진면목이다.

여기에 주자학은 책읽기를 추가했다. 책읽기를 통해 유학 최고의 인간형인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는 주자학의 주장은 당시로선 혁명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자학도 세월이 흘러 점차 과거시험용 암기식 지식으로 전락하는 폐단을 드러낸다.

정교수가 이 책에서 많이 인용하는 조선 후기의 문장들은 바로 이런 폐단을 지적하며 쓴 글이다. 유학적 삶의 본래 모습을 되찾자는 것이다.

"독서의 목적은 지혜를 얻는 데 있었지 지식의 획득에 있지 않았다. 선비들이 세상을 읽는 안목과 통찰력이 모두 독서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들의 지혜는 힘을 앞세운 서양문물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나아가 오늘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그들의 진지함은 오히려 '책만 읽는 바보'의 한가한 소리로 폄하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세기 정신못차릴 정도로 급격하게 전개된 근대화의 물결을 이제는 차분하게 되돌아볼 정도로 우리도 성숙했다. 이는 지금 여기 우리의 좌표를 새롭게 설정하며 정신차릴 수 있는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성찰로 이어진다. 그것이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옛 모습을 되돌아 보는 이유다.

정교수가 또 주목하는 것은 옛 사람의 글쓰기다. 그들은 기술적 측면보다 주제의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를 활법(活法)이라고 부른다. 살아 있는 글쓰기는 고정된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다.뚜렷한 주제의식을 자유롭게 변주한다.

정교수는 고급한 성찰의 내용을 쉽게 풀어 냈다. 옛 것에 대한 강조가 단순한 복고가 아님을 거듭 밝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일간지 등에 연재한 짧은 글을 수정 증보한 모음집이므로 필요한 부분을 골라 읽어도 무방하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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