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사회주의자 변치 않는 인생관 조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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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소설가 김원일(61)씨가 다음주 창간호를 내는 계간 문예지 『문학인』(시공사)에 중편소설 '손풍금'을 발표한다. 등단 후 환갑이 된 올해까지 그의 작품 세계는 줄곧 분단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이번 소설은 해방 후부터 6·25 직전까지의 이북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는 게 특징이다.

"광산 십장 하던 일본 놈들, 그 아래 붙어 먹던 간살쟁이 친일도배… 지주, 협잡질 일삼던 사기꾼도 자취를 감춘… 광수와 나의 청춘은 해방과 전쟁 사이 우리 가족이 한 울타리 안에 살았던 한 시절이었고, 그 한때는 분명 한여름날 소나기 끝에 보게 되는 오색찬란한 무지개, 그렇게 영롱한 시간대였다."(결말 부분)

작품은 대학원생 손자가 간첩으로 남파됐던 작은 할아버지의 일대기를 '분단시대 어느 사회주의자의 생애'란 주제로 논문을 쓰며 정리해 본다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에 손자의 친할아버지도 화자(話者)로 등장해 동생과 자신의 관계, 손자 세대와의 단절감 같은 것을 토로하는 부분이 소설의 또 하나의 중심축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간첩으로 남파됐다 붙잡혀 장기수로 복역하게 된 비전향 사회주의자(작은 할아버지)를 분단 현실의 희생양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데 대해 김씨는 "젊었을 때의 신념과 철학, 인생관을 변치않게 지킬 수 있다는 건 인간적으로는 하나의 덕목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설명한다.

작가 자신의 아버지 또한 월북자이자 6·25 종전시 포로 교환 협상 테이블에 북측 대표로 나올 정도로 고위직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작가의 '아버지에 대한 이해심'으로 이 작품을 바라 볼 수도 있다.

김씨는 "1987년 이후에야 아버지가 월북자란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내 주민등록상의 호주는 아버지로 돼 있을 정도로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침 김씨는 지난달 30일 대한적십자사 의뢰로 이산가족 상봉 행사 집필자 자격으로 금강산에 다녀왔다. 그러나 북쪽의 가족을 만나진 못했다. 그는 "돌아가신 해가 76년이란 소식은 건너 들었지만 기일이라도 알아야 제사를 지낼텐데…"라며 "이북에서 재혼해 1남1녀를 두셨다고 하니 장남인 나로서는 동생들을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들 인식이 월남자 가족만이 아니라 월북자 가족도 이산가족으로 인정하는 데에까지 나아가야 한다"며 "상봉 행사를 보니 예상대로 부모-자식 직계 가족이 만나는 비율이 너무 적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실의 분단과 대치가 평화와 교류로 발전해 분단의 비극이 문학의 소재로 떠오를 기회가 확 줄어들었으면 하는 것이 김씨의 바람이다. 김씨는 "왜 분단 문학을 물고 늘어지냐면 우리가 이 얘기를 할 마지막 세대이고 음악·영화·연애 얘기는 젊은 세대가 하는 게 맞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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