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전쟁 멸시하는 당신, 속물이거나 무지하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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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쟁 본능
마틴 판 크레펠트 지음
이동훈 옮김, 살림
612쪽, 2만7000원

혹시 당신은 군대·전쟁을 혐오 내지 무시하는 쪽인가? 군대·전쟁이란 거칠고 비인간적이며, 문민(文民)통제가 필수라고 믿는가? 책 머리말의 지적대로 호전적인 군대·전쟁이란 구시대의 일그러진 유산에 불과하다고 단정하는가? 요즘은 그런 통념이 대세인데, “1945년 이후 힘을 얻은 반전(反戰) 태도의 융성”(357쪽) 탓이다. 하지만 전쟁문화를 멸시하는 사람들은 학자인 척하는 속물이거나, 전쟁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게 저자의 단정이다.

오해 마시라. 저자는 역사학자(예루살렘 히브리대)일뿐 전쟁광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역사에서 전쟁 없이 성장한 문명·종교·민족이란 단 하나도 없다. 얼마 전까지 유럽사회의 기사도, 일본의 무사도란 가장 높은 사회적 가치였다. 그리스의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 역시 전쟁문학의 범주에 속한다. 고대 로마인들은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대비하라”고 말했는데, 좋고 싫음을 떠나 전쟁이 피할 수 없는 인간조건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세계는 수상쩍다. 약소국 사이의 작은 전쟁이 잦을 뿐, 2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 사이의 큰 전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건 전쟁 종식의 징후일까? 전쟁은 “노예제도처럼 언젠가는 사라질 사회적 관습”(313쪽)일까? 저자는 지금 시대를 전간기(戰間期)로 규정한다. 지금 ‘공포의 균형’ 때문에 갈등이 억제되고 있을 뿐, 인류사에서 전쟁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이 책은 『중세의 갑옷』『세계의 군용기』처럼 전쟁·군대의 세부적인 측면을 다루는 밀리터리 매니아용 읽을거리가 아니라 ‘군대·전쟁의 모든 것’을 조망하는 고급 저술이다.

인류문명과 전쟁은 분리할 수가 없다. 그러니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대비하라”란 로마 속담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진은 2008년 건군 60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공대지 미사일을 싣고 서울 강남 테헤란 로를 행진하는 기계화부대 행렬. [중앙포토]

원서 제목 ‘전쟁 문화(The Culture of War)가 암시하는 대로 인류학이나 사회사적 접근방식까지 동원하고 있다. 저자에게 전쟁문화란 무엇일까? 군복·무기·전승기념비·전쟁문학에서 충성·명예 같은 군대의 덕목은 물론 사회가 군대와 전쟁을 바라보는 통념까지 포괄한다.

정상적 군대라면 합당한 전쟁문화를 갖춰야 옳다. 그런 전쟁문화를 업신여기는 나라는 재앙을 면키 어렵다. 그런 반면교사가 2차 대전 이후 독일연방군이다. 히틀러의 범죄, 나치즘의 과거 때문에 독일은 자의반 타의반 전쟁문화 전통과 끊기고 말았다.

연합군은 아이(독일 전쟁문화)의 때를 벗기길 원했지만, 목욕물을 내버리며 자칫 아이까지 잃어버렸다. 전후 독일사회가 “군인은 곧 군복 입은 시민”이라는 원칙을 너무 강조한 탓이다. 다음 “엉터리 나라”(459쪽) 독일에 대한 묘사는 남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하층민 출신이 대부분인 징집병들은 군 복무를 마치 로또복권에서 떨어진 것처럼 재수 없는 일로 여긴다. 상류층 자제들은 상대적으로 대체복무를 할 기회가 많다. 장교를 포함한 직업군인 역시 자신들을 별난 제복을 입고 조국을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좀 특이한 직업공무원쯤으로 여긴다.”(452쪽)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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