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Special] 인터뷰 - 외교부 여성 직원들의 희망 백지아 국제기구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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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오전 8시30분 외교통상부 청사 17층 상황실. 장관을 포함한 57명의 고위 간부가 실·국장 회의를 위해 모여든다. 현재는 57명 모두가 넥타이를 맨 남성이다. 그러나 8월 초부터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외교부 사상 세 번째로 국장급 자리에 오른 여성인 백지아(47) 국제기구국장이 참석한다. 홍일점이다. 6월 14일 국제기구국 협력관에서 국제기구국장으로 승진 발령받던 날, 그의 사무실엔 지위고하를 막론한 후배 여성들이 줄을 이어 축하의 뜻을 전했다. 휴대전화도 축하 문자와 전화로 불이 났다. 사무실 벽 한쪽엔 세계지도와 함께 그의 사무실을 다녀간 기자들의 명함을 붙여놓은 게 눈에 띈다. “다녀가 주신 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기 위해서”라는 말에서 세심함이 묻어났다. 24일 발표된 외무고시 최종 합격자(35명) 중 여성이 60%(21명)를 차지했다.

백 국장은 서울대 외교학과 4학년 1학기 재학 중 18회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이른바 ‘소녀급제’다. 김영임(12기·은퇴) 전 튀니지 대사에 이어 두 번째 여성 외시 합격자로 기록됐다. 이후 뉴욕 영사, 주 유엔 2등 서기관, 대통령 비서실 파견을 거쳐 2002년 인권사회과장이 됐다. 이후 제네바 참사관 등을 거쳐 2009년 국제기구국 협력관이 됐다. 같은 해 10월엔 장관 특명으로 ‘저출산 고령화 사회 문제 담당 대사’라는 특별한 직함도 달았다.

● 외교부 사상 세 번째 국장급 여성 간부로서 소회가 특별할 것 같습니다.

“여성 후배들을 위해 발자국을 깊고 또렷하게 남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해 왔어요. 저희가 남긴 발자국을 후배들이 따라오면 길이 만들어지니까요.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공대엔 여자 화장실이 두 층에 겨우 하나 있던 시절이었어요. 외교학과엔 여자가 4명뿐이었습니다. 지금은 사회 전반적으로 많이 변했지요. 제가 입부했을 때는 여성 사무관이 있다는 걸 다른 부처에 알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제는 후배가 많이 들어와 저희가 든든해졌으니 후배들에게 도움을 받은 셈이죠. 여성의 적이 여성이란 게 아니라 여성의 동지가 여성인 거지요.”

● 하지만 아직도 ‘여성 간부 3호 탄생’이 뉴스가 되는 현실이 반갑지만은 않은데요.

“외교부 역사가 60년이 넘는데 여성 국장이 아직 세 명뿐이라는 점에선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여성 간부’라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한 일로 여겨지지 않을 날이 곧 올 겁니다. 지금 후배들 보면 외무고시 합격자 상당수가 여성입니다. 과장급은 본부와 해외 근무자를 통틀어 6명 정도지만 그 이하 레벨에 우수한 여성 후배들이 포진해 있어요.(현재 5급 이상 외교관 1295명 중 여성은 17%인 219명이다.) 10년만 지나면 기구표의 남녀 비율이 많이 달라질 겁니다. 이미 현실에선 젠더(성)가 중요하지 않아졌어요. 여성이기에 우대받는 시대는 지났죠. 이제 곧 남성분들이 양성평등을 주장할지도 모르지요(웃음).”

● 85년 입부 후엔 여성으로서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요.

“어려웠던 만큼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제가 임신했을 때 얘긴데, 소식을 들은 행정 담당 여직원분이 벌떡 일어나 국장에게 가더니 ‘국장님, 재떨이 치우겠습니다. 앞으로 사무실 내 금연입니다’라고 했어요. 당시만 해도 사무실에서 담배 피우는 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어요. 주변의 이런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 백 국장도 20년 넘는 결혼 생활 중 남편과 함께한 시간은 10년이 안 되는데요.

“저는 그래도 남편이 교수인 데다 방학도 있고 해서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지요. 대부분 여성 외교관들은 주말부부를 부러워합니다. 해외 근무를 하면서 주말부부를 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웃음).”

● 저출산 고령화 사회 문제 담당 대사직도 맡아왔는데요.

“지난해 10월 1년 임기로 대사직을 맡은 이후 세계 각국의 출산·육아 정책을 많이 들여다보고 사람들도 만나봤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일·가정의 양립이 중요한 테마가 되고 있어요. 여성들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일하는 여성이라면 정도는 달라도 다 힘들지요. 아이와 가정에 남들보다 시간을 못 쓴다는 죄책감도 있고요. 그래도 다행히 여건이 좋아지고 있는 편입니다. 우리 청사에도 야근자를 위해선 밤 10시까지도 아이를 봐준다고 하더군요.

● 일과 가정의 양립을 어떻게 해오셨나요.

“모드 전환이 중요해요(웃음). 집에 들어가면 딱 스위치를 바꿔 (주부로) 모드 전환을 했지요. 가정을 가진 일하는 여성은 다들 멀티태스킹을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이건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마찬가지고요. 하는 동안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도 지나가면 보람을 느껴요. 후배들이 ‘아이 어떻게 키우셨어요’라고 종종 묻는데, ‘열심히 하다 보면 알아서 큰다’고 답해줘요(웃음). 저는 집·사무실·보육시설이 삼각형을 그리고 각 꼭짓점이 최대한 인접 거리에 위치하도록 만들었어요. 서울 본부에 근무할 때는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인 무악재에서 살았고, 미국 뉴욕에 근무할 때는 맨해튼 사무실 근처에 집을 얻었지요. 맨해튼의 집값이 만만치 않았기에 사비가 많이 들었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서울에선 점심 때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려가 아이 학교에서 급식 당번을 한 뒤 사무실에 김밥 한 줄 사들고 돌아오곤 했죠.”

● 내년이면 한국의 유엔 가입 20주년입니다. 국제기구국장으로 어떤 청사진을 갖고 있습니까.

“20주년이니 사람으로 따지면 성년이 되는 셈입니다. 중요한 한 해가 될 거라 어깨가 무겁습니다. 관련 포럼도 구상 중이고, 여러 계획을 많이 잡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국민이 보다 많이 국제기구에 진출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드리는 일에 중점을 두려고 해요. 얼마 전 국제기구 진출 설명회를 서울뿐 아니라 부산에서도 개최했는데, 호응이 대단했어요. 서울에서 인원 제한 때문에 못 들으신 분이 부산까지 온 경우도 많았습니다. 앞으로는 전국 각지에서 개최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 국제기구·외교무대 진출을 꿈꾸는 젊은 여성들에게 한마디 해 주신다면.

“하고 싶은 일의 방향을 일찍 잘 잡아서 커리어 관리를 해 나가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중구난방으로 이것저것 하기보다는 정말로 원하는 일을 찾아서 그 방향으로 경력을 쌓아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국제 인권 관련 기구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관련 단체와 행사를 찾아서 적극적으로 인턴·자원봉사 경험을 쌓는 겁니다. 그리고 국제기구에서 일하려면 열린 마음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세도 필수예요. 국제기구에선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동료가 되니까요. 국제기구 진출 설명회에 가보면 우리나라 여성들 중에 훌륭한 인재가 이미 많아서 앞으로 더 잘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글=전수진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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