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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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지난달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제1회 조선콤퓨터쏘프트웨어 전시회'에 다녀온 국내 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의 사장은 "북한의 정보기술(IT) 수준이 높지는 않으나 음성인식·의료·번역 등의 분야는 경쟁력이 있어 남북 소프트웨어 협력의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이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등 다양한 정보기술을 대외에 알리는 행사를 개최한 것을 계기로 정보통신 분야의 남북 협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남북을 연결하는 정보통신 인프라가 구축될 경우 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 교류의 주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주요 업체들은 북한측과의 접촉 및 협력 방안을 조심스레 타진하고 있다. 특히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소프트웨어 분야를 중심으로 민간 차원의 접촉 및 교류가 일부 이뤄지면서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동안의 남북간 정보통신 협력은 남북대화나 경수로·금강산관광 등 다른 경협사업을 원활히 하기 위한 통신지원 중심으로 추진돼 왔을 뿐이다. 올 1월 현재 남북간에는 남북대화용 26회선·항공기 관제 3회선·경수로건설 16회선·금강산관광 11회선 등 총 56회선의 통신망이 가설돼 있다. 남북간 기술교류의 현황과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를 살펴본다.

◇소프트웨어와 인력분야=삼성전자는 북한의 조선콤퓨터쎈터와 연간 70만달러 규모의 소프트웨어 공동개발 계약을 하고 베이징 중관춘 부근에 소프트웨어 공동개발센터를 설치, 운영 중이다. 2000년 3월 사업이 시작돼 7명이었던 북한측 엔지니어의 상주인원도 현재 12명이 넘었고 공동개발 과제도 5개에서 10여개로 증가하는 등 활성화하는 추세다.

소프트웨어 분야의 교류 활성화를 위한 인력양성도 추진되고 있다. 하나비즈닷컴은 북한과 공동으로 중국 단둥 지역에 하나프로그램센터를 2000년 4월 설립, 북한의 IT인력에 대한 교육과 소프트웨어 공동개발 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IT 기초분야인 리눅스나 언어처리 같은 분야에서 남북한 공동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드웨어=하드웨어 분야의 교류는 단순기기 임가공 생산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화기(삼성전자)·컴퓨터모니터용 인쇄회로기판(IMRI)·ADSL 신호분배기 및 발신자표시장치 전화기(하나로통신)등에 대한 임가공사업이다.

특히 ADSL 신호분배기 임가공사업의 경우 2000년 7월 하나로통신이 1만4천달러를 투자, 평양에 1천여평 규모의 공장(삼천리하나로센터)을 설립하고 지난해부터 가동 중이다.지난해 생산량은 필터 17만1천개,신호분배기 1만개다. 하나로통신은 또 지난해 초 베이징에서 북한측과 3차원 애니메이션 '게으른 고양이 딩가'를 공동개발키로 계약했다.

하나로통신 관계자는 "ADSL 관련 필터 임가공생산을 연간 36만개 이상으로 늘리고 3차원 애니메이션 후속작품 개발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경수로건설을 위해 북한에서 근무 중인 남측 근로자에 대한 제3국(베이징)을 경유한 우편물 교류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만 발송 3천8백70통, 도착 4천5백40통 등 8천4백여통의 우편물 교류가 이루어졌다.

지난해 10월에는 이동전화서비스 사업자들이 북한을 방문, 북한에서의 이동전화서비스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기도 했다.

◇과제=그동안 정부에서 남북교류협력 승인을 받은 사업은 20여건이나 제대로 진행 중인 것은 4~5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협력 초기에는 거창한 사업계획과 함께 대대적인 홍보를 하면서 사업을 추진했지만 남북 기업간의 이해부족 등으로 사업이 흐지부지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민간접촉 때 중개인이 끼어들면서 각종 사기사건이 발생, 사업이 중단되고 남북간의 신뢰에 금이 가는 경우가 많아 민간기업들은 '정부창구'의 공식화를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남북교류와 관련, 북한주민 접촉 승인권을 갖고 있는 통일부는 민간기업간의 접촉에 정부가 끼어들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함께 기술적인 측면에서 남북간 소프트웨어의 표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글코드만 하더라도 남북이 달라 본격적인 협력이 진행될 때 통일된 문자구현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또 '전략물자 수출입공고'에 따라 북한에 486급 이상의 PC를 반출할 수 없는 등 IT분야의 물적교류가 제한돼 있어 이에 대한 규제 완화를 재검토 해야 할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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