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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미디어 그룹 '베텔스만'의 미델호프 회장 "미디어는 창의성이 생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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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난해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책 박람회에서 이슈를 선점한 것은 '주문형 출판(POD·Print On Demand)'이었다. 전자책(e-북)이 미처 자리를 잡기 전 새로운 개념의 미디어로 각광을 받을 것이라는 평가였다. 출판을 포함해 이같은 세계 미디어의 변화를 주도하는 곳이 세계 3위의 미디어 그룹인 독일의 베텔스만이다. 이 그룹 토마스 미델호프(Thomas Midellhoff·49) 회장을 본지가 단독으로 만났다. 그는 베텔스만의 아시아 전략 수립을 위해 지난달 29일 서울을 처음 방문했으며 30일 오후 일본으로 급히 날아갔다.

-먼저 한국에 온 목적이 궁금합니다.

"새로운 세상과의 첫 만남이 항상 그렇듯이 먼저 한국이라는 나라, 사람들, 그리고 미디어 산업과 거기서 나오는 제품을 파악하러 왔습니다. 베텔스만은 이미 한국에서 음반사업에 진출했고, 2년 전 시작한 북클럽 사업도 성공적입니다. 특히 한국에서 사업 파트너를 찾으려고 합니다.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상대방을 만나 공동 사업을 펼치고 싶습니다."

-1998년 11월 1일 비교적 젊은 나이에 베텔스만의 최고 자리에 발탁됐습니다. 스스로 능력을 평가한다면.

"(웃음)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베텔스만 이사회가 저를 신뢰한 것은 당시 세계화, 미디어 융합, 국제화 시대에 베텔스만을 국제적인 경쟁력이 있는 기업으로 키워나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취임 3년 후에 베텔스만은 AOL 타임 워너와 월트 디즈니 그룹에 이은 세계 3위의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했고, 현재 사업 지역을 독일·유럽·미국으로 3분할하면서 확대일로를 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해 그룹의 기본 전략을 '세계로(worldwide)'로 정한 이후 동아시아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아시아의 미디어 시장을 어떻게 전망합니까.

"우리는 동아시아, 특히 한국·중국·일본·싱가포르·홍콩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텔스만의 사업 전략은 철저히 지역화(localization)에 중점을 둡니다. 이것이 머독의 뉴스코프, 테드 터너의 AOL 타임워너 등 다른 미디어 그룹과의 차이점입니다. 향후 우리는 한국과 중국에서 TV사업에 진출할 것을 구상 중입니다. 물론 법적인 제약 요인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전통적인 미디어의 역할인 공론장으로서의 의미는 차츰 줄어들면서 투자한 자본에 대한 이윤추구의 장이 되고 있는 듯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미디어 기업은 원래 민주사회에서 언론의 책임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편집권과 제작권이 독립되어야 하고, 이것을 여러 겹의 제도적 장치로 둘러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미디어가 정치적인 배경을 가지고 특정 목적을 위해 운영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베텔스만은 진실된 정보 전달과 오락 제공에 충실하고자 노력합니다. 그것이 베텔스만의 목표인 경제적 성공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믿습니다."

-취임식 때 미디어 기업의 현대화·열림성·창조성을 얘기하면서 특히 내부 멤버의 창조적인 능력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경영의 핵심 전략을 미국으로 집중시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어려웠던 경험이 있었다면.

"(웃음) 가장 어려웠던 날은 AOL사업을 포기했을 때 입니다. 왜냐하면 저의 노력과 감성이 배어 있었고, 그 회사의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미국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그 경험이 아시아 시장에서 쓸모있게 적용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난해에 미국 등에선 많은 닷컴기업들이 몰락 했습니다. 닷컴 기업의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

"미디어와 오락 사업을 포함한 인터넷 사업의 앞날은 낙관적입니다. 나스닥의 주가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장기적인 전망을 갖고 실행에 옮기는 게 필요합니다."

-회장은 미디어 CEO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예컨대 베텔스만의 사주인 몬(Mohn) 가문의 반대에도 AOL에 많은 주식을 투자하였고, 주가가 최고였던 시기에 주식을 매각하여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였습니다. 이러한 사업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지.

"AOL주식의 판매 결정은 주식 가격보다는 베텔스만의 미래와 상관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 인터넷의 포털 서비스 사업보다는 미디어 제품의 고객 서비스를 위해 전자상거래(e-commerce)에 투자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의 다음커뮤니케이션에 투자했습니다."

-WTO체제 출범 이후 세계는 단일 미디어 시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는 신문의 복합 소유와 지상파 방송을 소유할 수 있는 겸영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법제와 정책으로는 한국에서 세계적인 미디어 기업이 탄생할 수 없습니다. 세계적인 흐름과 반대인 이 부분에 대해 충고를 한다면.

"저는 아직 한국 미디어 시장과 법률을 잘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한국에 어떤 말을 해줄 입장이 아닙니다. 독일·프랑스·영국 등에서도 시장에서 여론의 독과점을 막기 위한 규제가 있습니다. 물론 이는 한국의 법적·제도적 제약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입니다."

-한국에서 미디어 사업을 위한 특별 프로젝트나 프로그램을 공개한다면.

"하드웨어로 보면 한국은 미디어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휴대전화 부분입니다. 이제 휴대전화를 통한 음악 등 콘텐츠 서비스가 가능합니다. 그것은 곧 미디어 기업들의 세계화 잠재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회장의 학창시절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아직도 그 꿈은 살아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저는 원래 작가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조용한 집의 벽난로 옆에서 앉아 저술 작업을 하는 것이었죠. 지금은 저의 직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베텔스만의 미디어 생산품 중 70%가 정신적 작업의 결과입니다. 신문·잡지·TV프로그램·음악·책 등. 저는 이러한 예술적인 창조를 이끌고 있고,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에 "은퇴 후에 전기를 쓰는 것으로 작가의 꿈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자 메델호프 회장은 "좋은 아이디어를 줘 고맙다. 한국의 번역 판권은 당신과 계약된 것으로 알겠다"고 농을 던졌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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