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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가 아끼는 선수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8면

한양대를 졸업하고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해 올해 프로 3년차인 미드필더 김남일(25)은 소속팀의 이회택 감독마저 능력을 의심했던 '버려진' 선수였다.

그가 지난해 8월 체코 원정 대표팀에 포함되자 히딩크 감독의 '선구안'에 비난이 쏟아졌다. 그는 공교롭게도 체코와의 평가전 후반 체코의 베르게르를 놓쳐 두번째 골을 허용, 0-5 대패의 결정적 빌미를 제공했다. 그로부터 5개월여. 대표팀의 붙박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리를 굳힌 김남일은 지난 1월 북중미골드컵이 끝난 후 대회 테크니컬 스터디그룹이 선정한 베스트 11에 뽑혔다. 또 지난 3월 핀란드와의 평가전에서는 대표팀 관계자들로부터 두골을 성공시킨 황선홍과 함께 최고의 평점을 받았다.

최근 이회택 감독도 사석에서 "김남일이 놀랄 만큼 좋아졌다"고 말해 '능력 인정'으로 시각을 바꿨다.

황선홍·유상철·이영표를 발탁하는 등 '선구안'에 관한 한 국내 최고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 정종덕 전 건대감독(현 SBS 스포츠채널 축구 해설위원)은 대표적인 안티 히딩크론자다.

그의 독설을 그대로 옮기자면 "박지성·송종국은 축구선수라기보다는 체력만 좋은 마라톤 선수고, 설기현은 땅만 쳐다보고 다니는 선수"다. 또 "경기 리딩 능력이 있는 고종수·윤정환을 냉대한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 지도자로 자질이 의심되는 친구"다.

그러한 정위원도 지난달 20일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 대해 "한국이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한 한판이었다"며 선전이었음을 인정했다.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을 평가하는 잣대는 특유의 축구철학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최전방과 최후방의 간격을 긴밀하게(30m이내)좁히고, 90분 내내 어떤 팀에도 밀리지 않는 체력전·스피드전을 요구하다 보니 자연히 기동력과 체력이 대표팀 발탁의 최우선 기준이 된다. 송종국·이천수·최태욱·박지성·이영표 등에 대한 신임이 두터운 반면 상대적으로 발이 느리거나 수비 가담이 떨어지는 박진섭·고종수 등은 대표팀에 붙어있지 못했다.

차두리의 꾸준한 기용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발빠르고 체력만 좋을 뿐 퍼포먼스의 마무리 능력이 대표감이 아니라는 지적이 줄기차게 제기됐지만 히딩크는 고집을 꺾지 않고 계속 기용했다.

차두리는 결국 코스타리카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고, 지금은 자신감이 충만해 있다. 선발 출장용은 아니지만 후반 투입되는 조커로서 가치를 입증한 것이다. 차두리는 히딩크의 모국어 격인 독일어에 능해 요구사항을 분명히 알아듣고 충분히 소화하기 때문에 더욱 귀여움을 받고 있다.

최전방에서 공간을 파고들며 상대 수비수를 뒤흔드는 능력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황선홍, 감각적인 슈팅 능력을 인정받은 최용수 등은 '킬러 부재'의 대표팀에서 그런대로 킬러 역할을 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점에서 신임이 두텁다. 돌아온 리베로 홍명보는 센터백 자리를 굳혔고, 플레이메이커 후보 안정환·윤정환은 눈도장 찍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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