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세계최대 리츠 출범 제동…67세 임대주택 세입자가 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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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홍콩의 60대 여성이 세계 최대의 부동산투자신탁(리츠.REITs) 회사의 출범을 당차게 막고 있다.

홍콩의 공공주택 거주자인 루사오란(盧少蘭.67.사진)은 19일 "정부 소유의 부동산을 마음대로 파는 걸 끝까지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공공 상가.주차장 빌딩을 펀드 형태로 쪼개 파는 데 맞서 법정 소송을 벌이고 있다.

리츠 회사의 공모주 청약(금액 3조원)에는 무려 90조원이 몰렸다. 개인 청약자만 51만명에 이르렀다. 홍콩 정부는 상장 예정일을 16일로 잡고 청약 절차를 마무리했으나 '법정 소송 중인 주식은 상장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발을 구르고 있다.

루사오란의 소송 명분은 "세입자의 동의 없이 공유 재산을 팔아 공공 주택.상가를 관리해야 할 정부의 의무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300만명의 임대주택 거주자가 위협을 받게 됐다"고 주장한다. 민주파 의원들이 이를 지원하고 있다.

홍콩의 법원은 촉박한 상장 일정을 감안해 지난 14일 초급 법원에서, 16일 고등 법원에서 각각 "상장 절차가 적법하다"고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종심 법원의 상고 절차가 남아 있었다. 홍콩 정부가 "상고 기한을 17일 오후 11시까지로 제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종심 법원은 "법치주의를 존중해야 한다"고 거부했다. 상고 기한은 원칙상 내년 1월 12일까지다.

따라서 공모주의 생사는 전적으로 루사오란의 손에 달리게 됐다. 그가 끝까지 버틸 경우 주식 상장 계획은 취소되고, 홍콩 정부는 청약 자금과 함께 위약금을 줘야 한다. 증권업계에선 "유.무형 손실이 60억홍콩달러(약 90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한다.

둥젠화(董建華) 행정수반은 최근 "홍콩의 안정과 번영을 해치는 배후 세력이 있다"고 민주파 의원들을 거세게 비난했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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