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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우석 칼럼

사랑방으로 간 삼고초려(三顧草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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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삼국지에서 삼고초려편이 그토록 빛나는 것은 유비(劉備)가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세번이나 찾아가 극진히 모셔왔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정말 위대한 점은 유비가 자기보다 잘난 공명을 끝까지 잘 썼다는 점일 것이다.

당시 유비는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고는 하나 신세가 고달팠다. 천하를 떠돌다가 낯선 형주(荊州) 땅에 와 남의 신세를 지고 있으면서 세력은 미미하고 좋은 참모가 없었다. 공명은 나이가 적지만 형주 주류 지식인의 대표 주자였다. 인망도 높았다. 또 처가 쪽도 실력자 집안이었다. 공명을 스카우트하면 많은 형주 명사들을 유비 진영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어찌 삼고초려의 수고를 마다하겠는가.

*** 자기보다 잘 난 공명을 쓴 유비

유비는 공명을 군사(軍師)로 모신 후 한방에서 자고 한상에서 밥을 먹으며 의논하고 배운다. 이때 유비는 천하 정세와 전략전술에 관해 집중학습을 받지 않았나 생각된다. 사실 철들자 전장을 떠돈 유비로선 체계적인 공부를 할 틈이 없었다. 둘이 너무 붙어 지내니 관우(關羽).장비(張飛) 같은 의형제와 오래된 가신들이 못마땅해 한다. 유비는 "내가 공명을 얻은 것은 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면서 여전히 붙어 지낸다.

이때 조조 군이 쳐들어온다. 유비가 회의를 소집하여 대책을 물으니 "물 더러 막으라 하면 될 거 아니오"하고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이때 유비는 "내가 지혜는 공명에게 얻지만 싸움은 너희들을 믿는데 무슨 소리냐"고 달랜다. 그리고 공명으로 하여금 군사를 지휘케 하는데 혹시 무장들이 명령을 안 들을까봐 자신의 인수(印綬)와 칼까지 주어 지휘권을 뒷받침한다. 공명의 작전이 기막히게 들어맞은 후에야 모두들 승복한다. 그래도 콧대 높은 관우는 여전히 버티는데 얼마 후 적벽대전 때 공명은 유비의 양해 아래 완전히 제압한다. 신참과 오래된 가신 사이를 잘 조절하여 공명을 수족같이 부린 유비의 그릇과 능력이 돋보인다.

유비는 확고한 기반을 잡은 후에도 공명을 잘 대접하여 마음껏 역량을 발휘하게 한다. 공명은 2대에 걸쳐 승상 직에 있으면서 빛나는 업적을 쌓는다. 그것이 삼고초려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삼고초려가 있었다는 소문이다. 삼고초려가 자가발전이라는 말도 있지만 삼고초려가 아니라면 도저히 갈 수 없는 자리에 간 사람이 많아 소문이 퍼진 모양이다. 그러나 빛나는 후속편은 없는 것 같다. 삼고초려 후의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천하의 공명도 유비 진영에 참여해 처음엔 고전했는데 보통의 인재야 오죽하겠는가. 유비 같은 출중한 리더십과 공명의 숭고한 재주가 합쳐지고 전란에 고통 받는 만백성을 구한다는 사명감이 같았기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당초 삼고초려의 재목이 아니든지, 모셔가기는 했는데 안방 아닌 사랑방으로 갔다든지 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삼고초려라면 안방으로 가서 나라의 중요한 일을 주도해야 하는데 사랑방으로 가면 손님 신세가 된다. 중요한 일에 소외되고 뜻과 재주를 펴 볼 기회가 없다. 잘못하면 행랑채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삼고초려가 사랑방으로 모셔지면 모양도 안 좋을 뿐더러 많은 백성들이 실망하게 된다. 그분들이 들어갔을 땐 뭔가 숨통을 틔워주겠지 하고 얼마나 기대들이 많았던가.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소식이 없으면 실망도 커진다. 더욱이나 평소 하던 언행과는 달리하면서 햄릿 같은 독백이나 하는 광경을 접하면 더 그렇다.

*** 엉거주춤 하기엔 사정 절박

나라 형편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럴수록 삼고초려들에 대한 기대가 드높다. 오랜 은인자중(隱忍自重)에서 벗어나 눈부신 활약을 해 주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는가. 모셔 간 측에서도 그럴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엉거주춤하게 시간을 보내기에는 사정이 너무 절박하다. 제갈공명과 같이 확실히 일을 할 수 있게 인수와 지휘도를 받든지 그것도 안 되면 더 잘난 삼고초려 감을 천거하는 방도도 있을 것이다.

요즘은 한해를 결산하는 연말이다. 나라가 이토록 어려운 때에 삼고초려들이 사랑방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광경을 보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