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 '혁신적 재창조'로 세계 보편윤리 우리가 만들자-지구촌의 맥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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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정재식 보스턴대 석좌교수

20세기 초만 해도 인간본성과 이성에 기반을 둔 도덕적인 법에 대한 신념은 서구 세계에 널리 신봉되었다. 그러나 동서간의 이데올로기 대립의 틀로 유지되어왔던 20세기가 끝나면서 민족·종교와 연루된 '문명의 충돌'을 연상케하는 현상들로 대치되고 있다.

문명은 부딪히고 영향을 주면서 발전·변화한다. 따라서 전통도 내외적인 도전에 의해 재해석되고 바뀔 때에만 살아있는 전통이 될 수 있다. 그런 만큼 보편가치를 준거로 민족문화나 전통을 재해석하고 혁신하는 창조적인 작업 없이 전통도 살아남을 수 없다. 공동가치를 정립하는 작업은 각 민족을 포함한 인류 전체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전략이다. 세계화는 그것에 반대하는 운동조차 글로벌한 연대없이 존립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이처럼 물리적으로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것을 하나로 묶어줄 공동의 신념과 가치가 아직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신학자 한스 큉(Hans Kng)의 '진정한 인간성(the humanum)'은 무조건적인 보편가치로 들 수 있다. 이같은 인본주의는 자칫 자연과 환경을 도구적 대상으로만 파악하는 인간우상숭배로 전락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종교적으로 해석한 '양심의 자유'또한 배타적인 역설에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인권사상은 기득권을 지키는 온갖 부당한 수단을 제어하는 원칙이 된다. 이런 저항세력에 맞서 인간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은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할 것이다. 사회발전단계와 문화전통이 다른 사회에서 인간 존엄성은 아직 보편가치로 수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명간의 대화나 이해는 종교간의 협력을 통해야만 한다. 세계의 영속적인 평화는 종교간의 대화 없이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종교란 사회통합의 기본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타협하기 힘든 근원적 권위를 주장한다.

특히 이슬람·기독교처럼 유일적 신앙을 지닐 때 타협과 양보란 더욱 힘들다. 공동가치를 이같은 초월적 권능이나 종교적 교리의 차원에서 찾고자 할 때 많은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타종교나 타문명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사하지 않은 것에서 유사한 것을 찾는 시적 천재성'이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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