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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심은 작약 그것의 이름은'꿈'④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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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밭이 삼백여 평이 있는데 골칫덩이가 됐다. 10여년을 동네사람들에게 그냥 빌려주었는데, 나무를 심으려고 밭 언저리를 파보니 폐비닐이 한없이 이어져 나왔다. 아내와 나는 처리할 방법이 까마득했다. 고물상도 단호한 거절의 손을 흔들어 보였고,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사람은 깨끗한 비닐만 가져간다고 했다. 그러면 폐비닐을 세탁소에 맡겨 드라이 클리닝이라도 하라는 말인지. 정말로 분통이 터지는 것은 상당한 경비를 들여 모셔온 트럭운전사의 태도였다. 세상에 이런 천치 바보가 아직도 남아 있느냐는 표정이다. 나는 안다, 그가 이 폐비닐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그리고 기도하는 심정이 됐다. 제발 어느 강변이나 숲 속에 쏟아버리지 말 것을.

많은 정성과 노력 끝에 우리 밭은 예쁘게 다시 태어났다. 즐거움과 보람의 희망열차 같았다, 처음에는. 그러나 그것은 잠시 뿐이었다. 지난해에 수박과 참외를 시도한 것이 내 불찰이다. 날이 가물어 밤늦게 까지 고무 호스로 물을 끌어대기도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영농비의 10분의 1만으로도 여름 내내 수박파티를 할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그 가을에 내년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궁리하다가 작약을 심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들어가 찾아보다가 경북 의성군청에 전화를 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작약 재배의 일인자라는 분과 연결이 됐다. 나무박사로 소문 난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을 모시고 차로 달려가 처음 보는 작약 종자와 뿌리를 싣고 왔다. 나무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동네 부녀회장과 다른 아주머니 한 분과 함께 새벽같이 와서 작약 밭을 만들어 주셨다. 로터리를 치고, 골을 만들고, 규격에 맞추어 정성스럽게 다 심는데 꼬박 하루 일이었다.

나의 꿈이 이번에는 성공할까? 자신감 반, 불안감 반이다. 빈 캔버스 앞에 마주서는 심정과 너무나 닮아 스스로 놀랐다. 40여 년을 해 온 작업이지만 항상 새 캔버스를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처음으로 가래를 쥐고 황무지 앞에 서 있는 그 느낌. 수많은 우여곡절과 남의 말과 자신의 변명 따위로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그 무엇에 내 몰리면서도 정작 자신은 알지 못하는 그 무엇. 정열도, 사명도, 영감도, 생활도 아닌 그것은 또 낭만도, 꿈도, 바람도, 더구나 허영도 아니다.

이제 봄비에 젖은 흙을 밀치며 순이 돋아나서 연약한 꽃으로 자랄 것이다. 아니, 가뭄이 오고, 벌레가 생기고, 병이 들기도 하고, 또 뭔가 잘못돼 시작부터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될는지 모른다. 생판 모르는 처방을 찾아 동분서주하기도 하고, 무섭게 쳐들어오는 잡초와의 일전도 각오해야 한다. 그래도 내 꿈은 계속된다. 잘 자라서 이삼년 후에는 탐스러운 줄기와 잎이 가득히 들어찬 작약 밭. 한 가운데로 널찍하게 뚫어놓은 십자로로 들어가서 찾아온 친구를 안내하기도 하고… 어디 초대 받았을 때, 한 아름의 작약 꽃을 꺾어서 차 뒷좌석에 싣고 가는 경험을 내가 제공할 수 있다는 소박한 꿈은 계속된다.

꽃이 피는 계절은 너무 짧다. 늦은 가을이나 초겨울의 을씨년스러운 텅 빈 밭에서, 내가 느낄 처량한 상실감이나 허무한 마음의 상처는 달빛에 언뜻 본 흔들리는 꽃대궁의 음영이나 소낙비 온 다음 날 아침에 손끝에 묻어나는 꽃향기만으로 충분히 보상이 될까? 왜 나는 하잘 것 없는 것에 큰 기대를 걸면서 남보다 힘든 길만을 찾아다니는 것일까. 나를 내모는 그 힘은 나의 바보스러움인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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